조여정(31)은 ‘작품과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를 꿈꿨다. 이 꿈을 데뷔한 지 1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이룰 수 있었다. 그를 눈여겨 보게 만든 작품은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2010)이었다. 최근 김대승 감독의 <후궁:제왕의 첩>(2012)으로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그의 새 출연작은 KBS 2TV 월화드라마 <해운대 연인들>이다. 조여정은 전직 조폭의 딸 역을 맡아 김강우·정석원·강민경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배우는 맛이 제각각인 열매를 맺는 나무다. 조여정은 데뷔 이래 10여 년 동안 자타가 인정하는 찰진 과실 하나를 영글지 못 했다. <방자전>과 <후궁:제왕의 첩>으로 ‘섹시한 나무’가 됐다. 사랑하니까, 살아 남으려고 ‘벗어야’ 했던 두 여인의 판이한 삶을 담은 실과를 빚어냈다. 절치부심의 결과물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더러 ‘에로’가 부각되기도 했지만.


■가슴이 콩닥콩닥….
조여정은 <방자전> 시나리오를 읽고 쾌재를 불렀다. 춘향과 몽룡·변학도·방자 사이의 4각 관계 드라마가 흥미진진했다. 네 인물은 기존의 그들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질 춘향은 예의 정절을 지키는 요조숙녀가 아니라 ‘여자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여인이었다. 춘향이 몽룡과, 그리고 방자와 섹스하는 장면을 읽을 때에는 부끄러웠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했다.

 

조여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마냥 도닥였다. 침착하자고. 그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김대우 감독을 만났다. 낮은 목소리로 하고 싶다고 했다. 김 감독이 노출 때문에 싫다는 걸 소속사에서 억지로 데리고 온 줄 알았을 정도로.

생애 첫 베드신이지만 조여정은 노출은 신경 쓰지 않았다. 김 감독의 전작 <음란서생>의 ‘정빈’(김민정) 등을 보고 감독이 여자의 아름다움을, 배우의 자존감을 살리는 걸 생명으로 여긴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각 베드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각각의 감정 연기에 혼신을 다했다. 앵글을 달리 한 두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찍어 베드신은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웃음을 버무려 놓은 <방자전>과 달리 <후궁>은 피눈물이 진득했다. 드라마·캐릭터·노출이 강렬했다. ‘또 사극에 노출’이라는 우려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고려 요건으로 삼지 않았다. 주변 요소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맡을 인물의 기구한 인생역정, 그 개릭터와 넓이와 깊이를 우선했다. ‘무조건 하겠다, 그래야 한뼘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여정은 두 작품·캐릭터의 선택에 대해 위험한 그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자신보다 더 용기 있게 뛰는 배우들이 많다면서 두 감독과의 만남은 행운이라고 했다. 20대에 못 만난, 앞으로도 연이 닿아야 해낼 수 있는, 몇 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흥행 희소식보다 기다리던 영화의 출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더 기뻤다고 했다.

■20대가 빨리 지나갔으면….
살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싶을 때가 있다. 과거로 되돌아가 새 출발 하고, 미래로 날아가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조여정은 고 2 때 학생지 모델, 고3 때 <뽀뽀뽀> 제15대 ‘뽀미언니’로 활동했다. 배우 데뷔작은 SBS 청춘시트콤 <나어때>(1998)이다. 송은이·송혜교와 한 하숙집에서 사는 여고생으로 호흡을 맞췄다. 조여정은 공주병 환자, 진짜 공주도 울고 갈 정도의 예쁘고 귀여운 중증 공주병 환자로 나와 주목을 받았다.

                          <뽀뽀뽀> 제15대 ‘뽀미언니’ 조여정(왼쪽)

 

조여정은 수능 보는 날 <나어때> 첫 촬영이 잡혀 시험을 마치자마자 일산 촬영장으로 달려갔다. 동국대 연극과에 합격하고, <나어때> 시청률도 좋아 이후에도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시작이 좋다고 과정이 순탄하고 결과도 좋은 게 아니다. 조여정은 공중파 3사의 <남의 속도 모르고> <마지막 전쟁> <덕이> <소문난 여자> <야인시대> <장희빈> <흥부네 박터졌네> <태양의 남쪽> 등에서 조연을 맡는 데 머물러야 했다. 신인으로서 의당 감내해야 하는 배역이고 통과의례라고 여겼고, 이만한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연기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못내 아쉬웠다. 연기를 하는 게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관계자·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못 했다. 도약할 수 있는 작품이 좀체 주어지지 않았다.

 

학교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올망졸망에 배역에 매여 수업에 충실할 수 없었다. 학과 실습 작품에서 비중 있는 역을 맡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외 활동이 없는 학우들의 텃세·견제 등에 마음을 다치고는 했다. 전공 수업이 있는 날 소속사에서 시킨 어린이 프로 MC를 보러 가야 할 때면 속이 까맣게 탔다.

 

                                           <나어때>(왼쪽)와 <조선에서 왔소이다>의 조여정

 

조여정은 <애정의 조건>에서 개성 있는 악녀 연기를 펼친 끝에 데뷔 이래 처음으로 MBC 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2004)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출장요리사 보조로 일하는 소녀 가장으로, 조선시대에서 서울로 오게 된 두 남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조여정은 모처럼 신이 났다. 하지만 시청률 저조로 7회 만에 조기 종영되면서 적잖이 낙담했다.

이렇듯 기울인 노력과 상반되는 결과를 맞는 나날이 계속됐다. 새 작품이 거론될 때면 늘 장전 상태에 돌입해 있었지만 불발로 그치는 나날이 잇따랐다. 시간을 유예시켜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아서 20대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 길이 아닌가?
‘낙타가 주저앉는 건 짐 위에 얹어진 지푸라기 하나 때문’이라고 한다. 조여정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고는 했다. 20대 후반에는 갈등이 고조됐다. ‘해야 하나, 그만둬야 하나?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데, 일단 기회를 가져야 보여줄 수 있는데, 내 길이 아닌가? 그렇다면 더 상처받기 전에 내가 먼저 끈을 놓을까….’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싫기까지 했다. ‘일복이 없으면 다른 복은? 남편복, 자식복? 그런 복은 있을까?’ 스물 일곱~여덟 살에는 그런 생각이 꽤 들었다.

이런 가운데 공부를 더하고 현장경험을 살려 연기과 교수가 되는 길도 염두에 두고 동국대 영상대학원에 진학했다. 강의를 열심히 들으면서 연극 <프루프> 연습에도 몰두했다. 매일 똑같은 대사를 수없이 반복했다. 자신의 장단점을 살폈다. 쉬는 시간에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이렇게 연습하고 있지만 영화·드라마에 써먹을 기회가 있을까?’ 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뭘 할 때 가장 행복했나?’라고 물었다. 대답은 ‘연기’였다. 연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연기를 하지 않으면 나는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엄살 그만 부리자, 부족한 게 많고 배울 게 천지다’라며 다시 일어섰다.

조여정은 배우의 좋은 점은 일상의 직간접 경험을 모두 직업(연기)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안타까운 점은 일단 선택을 받아야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감독·동료·스태프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성과를 낼 수 없는 거라고 했다. ‘감독들이 욕심을 내는 배우, 동료들이 함께 하고 싶은 배우, 관객들이 대화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가장 두려운 존재는 관객이라고 했다. 관객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멀고도 어려운 이웃이라고 했다. 에로 이미지가 부각된 데 대해 숲을 안 보고 나무만 보면 그렇게 여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만큼 그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달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뒷걸음을 치더라도 옆길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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