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42)이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EBS의 박정민 PD(40)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 감독과 박 PD는 우선 세 편을 완성, 오는 겨울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등이다. 편당 러닝타임은 30분 안팎이다. 세 편을 묶어 상영한다. 이어 1년에 세 편씩 완성할 계획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등 고전을 위주로 하되 생존 작가의 작품도 소개할 계획이다.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 읽는 한국문학을 지향한다. 안 감독과 박 PD에게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대해 들었다.

 

 

-원작에 충실하게 그리나.
“작품 고유의 언어와 감성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작가가 원고지에 담아내고 싶었던 글 이전의 그림도 담는다. 사료와 고증을 통해 시대적 배경과 지역적 특성 등도 세밀하게, 정성스레 묘사하고 있다. 고전을 위주로 하면서 나중에는 생존 작가의 작품도 다룰 계획이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원래는 예순 살이 넘었을 때 성숙한 시선으로 담아내려고 했다. 지난해 경북 왜관의 한 산골 문화회관에서 <소중한 날의 꿈>을 상영한 뒤 계획을 앞당겼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큰 화면으로 보신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영화가 끝난 뒤 ‘손주들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네’ 하시더라. 그때 약속 드렸다. 앞으로 애니메이션을 적어도 몇 편을 더 보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생활에 쫓겨 읽지 못했던 우리 문학을 그분들께, 기성세대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청소년에게 우리의 기억을 이어가게 하고 싶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과 동이, <봄봄>의 데릴사위,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 등을 통해 밥상에서 가족간에 토론과 대화가 이뤄지는 가교가 되었으면 한다.”

-해외 반응은 어떻게 보는가.
“우리 문학과 한글의 우수함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의 창작활동에 원형이 되기를 바란다. 그림 맛으로 글 맛도 느끼게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이 뿌리가 되었으면 한다. 글이 부딪히는 장벽을 애니메이션은 뛰어넘을 수 있다.”

-박 PD는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 감독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은 의미 있는 작업이고 돈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낌이 왔다. 안 감독의 스튜디오 상호 ‘연필로 명상하기’에 맞는 톤으로 제작하면 완성도와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본다. 투자 건을 논의하던 중 안 감독에게 첫 프로젝트 결과를 놓고 안정적으로 기획의도에 충실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보자고 했다.”

“박 PD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번 작품은 연필로 명상하기와 EBS, 출판사 김영사가 함께 만든다. 다음 프로젝트는 훗날 논의하기로 했다. 방송국 PD와 철학을 공유하는 건 선례가 없다. 창작자에게 큰 힘이 된다. 박 PD는 <소중한 날의 꿈> 제작 막바지에 알았는데 엄상현 등 유명 성우분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목소리 연기를 하도록 도와주었다.”

-박 PD는 직장 일과 겸직이 가능한가.
“회사에 방영을 전제로 투자 제안을 했을 때 선뜻 수용됐다. 의미 있는 작업이고 시청률과 수익성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것도. 이 일을 잘 하는 게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

-제작비가 얼마나 드나.
“편당 2억5000만 원 정도이다. 편당 제작비가 TV 미니시리즈 한 회분보다 더 들고, 캐릭터 상품 판매나 단기간에 성과를 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돈도 벌 수 있다고 본다. 극장은 물론 공동체상영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 PD 전망은 어떤지.
“단편문학 애니는 시류를 타지 않는다. 극장·공동체상영의 단체관람 외 DVD 등 부가판권시장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일반 관객을 비롯해 학교·도서관·지자체 등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어서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동체상영은 특정 단체 등의 요청에 따라 현지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방식을 말한다. 독립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안으로 손꼽힌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의 경우 제작사(스튜디오 느림보)에 따르면 국내외 공동체상영에서 2007년에만 약 10만 명이 관람(극장 관객은 3만4439명·한국영화연감 기준)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얼마나 했나.
“이제까지 60회 넘게 했다. 요즘도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오는 9~10월에는 그간의 기록을 정리해 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공동체상영은 만드는 사람의 태도를 바꾸게 해준다. 잘 만들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걸 확인하게 해주고.”

 

<소중한 날의 꿈>은 안 감독이 동료이자 아내인 한혜진 감독 등과 함께 무려 11년에 걸쳐 완성했다. 운동회에서 2등을 한 뒤 육상을 포기한 ‘이랑’. 서울에서 전학온 세련되고 조숙한 ‘수민’, 엉뚱한 과학실험을 즐기는 ‘철수’ 등 청소년의 꿈과 성장통을 그렸다. 제작비는 18억 원. EBS 등의 투자를 받았고,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의 지원을 받았다. 안 감독은 제작비가 떨어지면 애니메이션판 <겨울연가>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등의 외주작업을 했다. 완성한 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극장 개봉이 힘들었다고 했다.
“부산에서 두루 호평을 받았지만 배급사가 나타나지 않아 애먹었다. 결국 <아따맘마> <명탐정 코난> 등 일본 애니를 수입한 에이원엔터테인먼트가 맡았다. 일본 애니를 수입한 곳에서 한국 애니를 도와줬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개봉은 지난해 6월 23일에 했다. 123개 스크린에서(이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3>가 개봉되면서 7일째에 41개, 8일째에는 18개로 줄고 말았다. 이후 예술영화전용관을 중심으로 상영됐다. 이 가운데 부산의 국도가람예술관에서는 1년 동안 장기상영을 했다. 이같은 사례는 <소중한 날의 꿈>이 처음이다. 국도가람예술관 측은 요즘 단체관람 신청을 받아 월 2~3회를 상영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상영 1주년 기념으로 감독판을 개봉할 예정이다.

안 감독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에는 <소중한 날의 꿈>을 그리느라 짤막해진 연필 수백 자루를 모아 만든 액자가 있다. 안 감독은 “상영할 때 영화에 실제로 사용한 작화와 몽당 연필을 관객에게 선물로 드렸다”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돈이 떨어졌을 때가 아니라 우리 작업의 의미와 희망에 의문이 생길 때였다”고 했다.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단편문학 애니가 10년, 100년 이어지는 국민적·국가적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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