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만대 감독(42)은 ‘에로영화 거장’ 혹은 ‘작가주의 에로감독’으로 손꼽힌다. <이천년> <연어> <아파바> <딴따라> 등 열다섯 편의 에로 비디오로 각광받은 뒤 극장 개봉작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2003)을 선보였다. 이어 공포영화 <신데렐라>(2006), 케이블TV 드라마 <동상이몽>(2005) <TV방자전>(2011) 등을 만들었다. 12일 ‘에로틱 불량 코미디’라고 명명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내놓는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하 맛섹사)에서 두 남녀는 둘만의 공간에서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이하 섹거비)에서 두 남녀는 카메라 앞에서 몸을 섞는다. ‘리허설이니까 살살하자’고 하고, 카메라를 든 감독의 ‘실제로 해보라’는 주문에 응하기도 한다. <맛섹사>의 베드신은 에로티시즘, <섹거비>의 정사신은 포르노그라피에 가깝다.

■“베드신 포인트는 배우와 관객의 정서 공유”
‘내숭떠는 대한민국 선남선녀를 향한 뻔뻔하고 발칙한 알몸 연애담’. <맛섹사>의 헤드카피다. 봉만대 감독은 <맛섹사> 연출 당시 데뷔작이 아니라 열여섯 번째 영화라고 했다. 전작의 연출 경험과 노하우, 자부심을 살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양지로 도약하려고 했다. 그 과정은 지난했다. 2002년 봄부터 준비, 가을에 촬영에 들어갔지만 이듬해 초여름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시작은 좋았다. 제작비 예산이 8억원. 1000~2000만원으로 4박 5일 동안 90분짜리 한 편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됐다. 오디션을 통해 뽑은 배우들도 흡족했다. 노출과 체위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열정과 연기력이 돋보였다. 옷은 잘 벗지만 연기가 안 되는 예전 배우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에로 비디오와 극장용 상업영화는 달랐다. 100m 단거리와 42.195㎞ 마라톤의 차이처럼 그 간극은 현격했다. 비디오는 약속한 기일에 맞추는 게 우선, 현장 여건에 따라 촬영하는 게 자유로웠다. 반면 상업영화는 시나리오대로 완성도를 담보해내야 했다. 예전에는 대여섯 명을 이끌고 혼자 내달리면 됐지만 이번에는 50여명의 출연·제작진과 호흡을 맞춰가는 게 중요했다.

이 와중에 제작사의 투자 유치가 차질을 빚어지면서 촬영이 중단되고 말았다. 제작자가 백방으로 뛰는 동안 봉 감독은 출연·제작진 회의를 계속 가졌다. 하나 둘 불참하면서 나중에는 한 명도 오지 않게 되자 봉 감독은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했다. 남은 촬영을 최소화해 영화를 완성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했다. 여관방에서 혼자 골몰하면서 너무나 외로워 메모지에다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끄적이기도 했다.

중단 기간이 3개월을 넘기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촬영감독 등이 <맛섹사> 이후에 하기로 한 작품 때문에 현장을 떠나야 했다. 광고를 하던 시절에 만나 의기투합했던 그들을 위해 봉 감독은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비워두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봉 감독은 촬영이 재개된 뒤 직접 카메라를 잡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 개봉을 앞두었을 때에는 제목에서 ‘섹스’를 빼야 하는 문제에 시달렸다. 포스터 문구도 ‘유해광고선전물’이라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서 반려됐다. 네티즌 참여 홍보 이벤트를 펼칠 때에는 <맛있는 XY, 그리고 사랑>으로 바꾸는 소동을 빚었다. 시내에 붙인 포스터가 찢기고 지하철역에 붙인 건 시민들 항의로 떼어야 하는 일이 잇따랐다.

 

<맛섹사>는 2003년 6월 27일 개봉, ‘극장 에로영화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전국에서 22만3000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하는 데 그쳤지만 요즘도 수익을 내고 있다. 봉 감독은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뒤에 한 포장마차에서 여섯 번을 봤다는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며 요즘도 잘 봤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말로 하는 사랑보다 몸으로 느끼는 사랑이 더 솔직하죠. 에로영화는 섹스로 눈길을 끌면서 스토리로 공감을 얻어야 해요. 섹스신도 정서를 자아내지 못하면 죽은 장면이에요. 섹스하는 사람의 정서를 보는 사람들이 공유해야 살아있는 장면이 돼요. 에로와 애로의 조화를 꾀하는 게 관건이죠.”


■“남녀가 손잡고 볼 수 있는 에로영화 만들겠다”
봉 감독은 배우 지망생이었다. 열여덟 살 때 진주 개천예술제에서 <방황하는 별들>로 연기상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배우를 포기한 뒤에는 연출부에서 활동했다. <돌아온 손오공> <영웅 후레쉬> <휘파람 부는 여자> <언더 그라운드> 등에서 조감독을 맡았다.

 

감독 데뷔는 1999년 한·일 합작 에로 비디오 <테크니컬 파울>(일본 제목, 도쿄 섹스피아)로 했다. <이천년> <연어> <아파바> <모모> <스파링 파트너> <귀공녀> <딴따라> <터치> <디지털 비디오> 등을 연출, 선풍을 일으켰다. 이름만 보고 선택하게 하는, 영화과 학생들이 찾는 감독으로 주목받으면서 팬카페 ‘애로(愛路) 감독 마니아존’도 만들여졌다.

봉 감독은 여느 감독과 달리 별다른 내용 없이 성애 장면이 이어지는 에로영화를 지양했다. 과감한 노출과 다양한 체위를 보여주는 데 연연하지 않았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감각적 영상을 지향했다. 드라마 구성에 역점을 두면서 베드신은 양보다 질로 승부했다. 다른 위치·앵글에서 네 대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한 화면으로 구성하는 등 파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맛섹사> 연출 당시 봉 감독은 배우들과 교감을 나누는 걸 우선했다. 베드신의 경우 직접 남녀 배우를 상대로 시연을 했고, 배우끼리 합을 맞춰 연습하도록 했다. 그런 뒤에도 배우들이 마음과 몸으로 베드신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다. 낮 장면은 낮에, 밤 장면은 밤에 찍었다. 극중 인물이 처음 하는 섹스는 촬영 초반에, 익숙해진 다음에 하는 섹스는 후반에 찍었다. 러브신은 몰아서 촬영했다. 배우들이 벗는 데 따른 번거로움, 부담감 등을 덜어주었다.

 


봉 감독은 <섹거비>에서도 이 원칙을 고수했다. <섹거비>는 포르노 유통 1번지였던 199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포르노 테이프 유통이 자주국방·부국강병을 위한 핵개발 비자금 마련의 일환이라는 소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무생이 에로영화 감독, 슈퍼모델 출신 티나와 심재균이 에로배우, 고수희가 유통업자, 이무영이 신분을 감추고 우동집을 하면서 비자금을 모으는 인물, 배한성이 안기부 팀장으로 출연했다. 극중 30%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스마트폰의 장점을 활용, 실험성을 꾀하면서 사실감을 높였다. 영화진흥위원회 심의에서 예술영화로 인정받았다.

봉 감독은 배우 복이 많다고 했다.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배우들 덕분이라고 했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 에로 이미지에 다시 엮이는 게 싫다면서 이전 영화의 배우들 이름을 사석에서도 거론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는 ‘주말의 명화’ 세대에요. 에로영화가 아니라 에로명화를 만들고 싶어요. 솔직한 영화가 좋아요. 남자랑 여자랑 손잡고 볼 수 있는 솔직한 에로영화를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서 만드는 거에요. 제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진정한 에로영화를 만들겠다는 제가 좋아요.”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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