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감독(42)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충무로’ 생활을 병행했다. 코미디와 액션 등을 버무린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등을 집필, 국내 최초로 억대 시나리오 작가로 등극했다. 이후 실력을 검증받은 코미디가 아닌 춤 소재 드라마 <바람의 전설> 등을 연출했다. 재난을 다룬 가족영화 <연가시>로 흥행에도 성공, 영화감독을 지망한 지 23년 만에 ‘재미있고 의미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꿈을 이뤘다.

 

 

■한 초등학생 덕분에 빛 봐
박정우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한 <연가시>는 ‘돈’ 때문에 벌어진 재난을 다뤘다. 여느 재난영화와 달리 양심과 도덕, 상식과 정의를 저버리고 탐욕을 쫓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준다. 지난 7월 5일 개봉, 12일 현재 451만950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했다. <도둑들>(923만7488명)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468만3598명) <내 아내의 모든 것>(458만8445명) 등에 이어 올해 한국영화 흥행 4위에 올라 있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는 37위로 그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 가운데 최고 성적은 거둔 <신라의 달밤>(441만8658명·38위)을 앞질렀다.

<연가시> 제작은 한 대학생과 초등학생 덕분에 시작됐다. 대학생은 박 감독에게 연가시의 존재를 알려줬고 초등학생은 투자를 받는 데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줬다.

공포문학 동호회 소속인 대학생은 2008년 봄에 한 방송사의 아마추어 작가 단편영화 전문가 품평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박 감독은 방송 이후 이 대학생을 따로 만나 그로부터 열 편의 습작을 건네 받았다. 이 가운데 한 편이 단편 <연가시>다. 박 감독은 변종 연가시의 독특한 특성에 초점을 맞춘 공포영화로 풀어내다가 그만두었다.

 

 

이로부터 1년여 뒤 곱등이 연가시 출현이 인터넷을 뜨겁게 장식했다. 검색어 1위에 오른 걸 보고 박 감독은 ‘누군가가 영화로 만들겠구나’ 하고 여겼다. 하지만 가시화되는 작품이 없었다. 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재난영화로 풀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다시 시나리오 작업에 달려들어 2010년 가을에 완성했다. 유명 투자·배급사에 시나리오를 보낸 뒤 CJ엔터테인먼트의 연락을 받았다. 박 감독은 훗날 CJ 관계자에게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날 초등학생인 아들이 <연가시>를 꼭 영화로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책상에 수북히 쌓여있는 시나리오 가운데 유독 <연가시>를 봤다는 게 뜻밖이었고 연가시를 모르는 친구들이 없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곧바로 시나리오를 탐독했죠.’

■‘웃음과 눈물의 마술사’

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개봉작은 <마지막 방위>(1997)부터 <연가시>까지 열두 편이다. 각색을 한 작품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강력3반>(2005) 등 두 편이다. 이 가운데 <키스할까요>(1998) <주유소 습격사건>(1999) <선물>(2001) <신라의 달밤>(2001) 등은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돌보면서 병원 보호자 대기실과 사무실을 오가면서 썼다.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제작진의 ‘좀더 재미있고 애달프게 해달라’는 주문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수정작업까지 마쳤다.

 


당시 박 감독의 어머니는 한 달 단위로 1주일 정도 입원해 항암제를 맞거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주변에서 권한 민간요법도 받았다. 박 감독은 고통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관객을 더 웃기고 울릴 수 있는지를 궁리했다. 이런 상황의 아이러니에 눈물을 흩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치병을 앓는 아내(이영애)를 두고 어떻게든 남을 웃겨야 하는 무명 개그맨 남편(이정재)의 이야기를 그린 <선물>은 자신의 이같은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다.

■학교 수업과 영화 촬영 병행
박 감독은 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영화계로 뛰어들었다. ‘대학은 졸업한다’는 조건 아래 부모에게 영화 하는 걸 허락받은 그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연출부 막내로 뛰면서 학업도 병행했다. 현역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에서 연출부, <꼬리치는 남자>(1995)와 <체인지>(1996)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할 때에도 학업을 병행했다. 부모님이 ‘영화를 계속 하면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해 학비는 자신의 수입으로 냈다. 소설 <낙서금지>를 냈고, 가수 윤하영의 노래 <너의 두 눈으로 하늘을 본다> 등의 가사를 쓰고,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 주제가도 썼다.

 

 

영화사 사무실에서 기숙하며 시나리오 습작에 매달린 그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 작업 때 쓴 <내 짝을 찾습니다>가 당시 삼성영상사업단의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체인지> 막바지 작업 때 <마지막 방위> 시나리오를 의뢰받으면서 조감독 생활을 접었다.

<마지막 방위>는 10여일 만에 완성했다. ‘초고를 빨리 쓰는 작가’로 이름을 얻은 그는 <산책>(2000)과 <키스할까요>를 동시에 의뢰받아 각각 보름 만에 초고를 넘겼다. 초고가 나와 있던 <신라의 달밤>은 재작업을 의뢰받은 뒤 원작의 제목과 캐릭터만 살려 1개월 만에 새롭게 완성했다. <연가시>는 이와 달리 약 1년 간 시나리오를 열네덧 번 수정했다. ‘청소년 관람불가’와 ‘전체관람가’를 오가면서 표현 수위와 메시지를 조절했다. 이제까지 각본 혹은 각본·연출을 맡은 작품 가운데 이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흥행작가에서 흥행감독으로

박 감독은 <연가시>에 앞서 연출한 <바람의 전설>(2004)과 <쏜다>(2007)로 쓴맛을 봤다.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기발한 코미디 영화를 만들거라는 주위의 기대를 잇따라 저버린 댓가를 톡톡히 치렀다. ‘잘 할 수 있는 걸 놔두고 딴 짓을 한 바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작가시절을 반복하는 건 감독으로서 의미가 없다면서 뜻을 접지 않았다.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시 기회를 잡는 게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코미디를 고려하기는 했다. 하지만 ‘잘 되면 그거 보라고 하고, 안 되면 이제는 코미디도 안 되네’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탈 코미디를 고수했다.

 


<연가시>는 이렇듯 도전으로 일관해온 박 감독의 영화인생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시나리오 작가 시절에는 남다른 아성을 구축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작품·흥행성을 인정받지 못한 데에서 벗어나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박 감독은 “코미디가 아닌 작품을 잘 만들 수 있는 걸 보여준 게 기쁘다”고 했다.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거라면서 전권을 행사했던 예전과 달리 <연가시> 때에는 달라진 시스템 내에서 출연·제작진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했다”면서 “영화는 함께 만드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연가시>로 얻은 결실 가운데 하나”라고 털어놨다.

박 감독은 <연가시>를 연출하면서 두 전작에서 함께 땀을 흘린 후배들을 조감독으로 영입했다. <식객2:김치전쟁>을 공동연출한 김길형 감독과 데뷔작을 준비하고 있던 이성준·한윤복영 등이다. 영화·드라마 기획회사 ‘Story Park’을 설립한 박 감독은 요즘 세 후배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감독으로서 겪은 어려움을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준 뒤 자신의 다음 작품을 준비할 계획이다.

 

 

 

[영화 내사랑] 영화감독 박정우가 본 <람보2>

(2008년 2월 14일, 스포츠칸)

 

중학교 땐지, 고등학교 때인지 가물가물하다.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사람대접 받고 살기 위해, 죽어라고 책만 파고 살던 삭막한 학창 시절이었음은 분명하다.

우연히 신문에 실린 영화 <람보2> 광고에 '개봉일 선착순 100명 기념 티셔츠 증정!'이라는 문구에 필이 꽂혔다. 학창 시절에 추억거리 하나 만들자며 꼬드긴 친구놈들과 함께 개봉 전날 밤 극장 앞으로 달려갔다. 영화 제목, 주인공, 줄거리… 그 따위 거 일절 관심도 없이 말이다.

내가 왜 그때 그 쓸데없는 공짜 티셔츠에 이성을 잃었는지는 평생 미스터리다. 그 당시 옷이 없어서 벗고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나와 친구들은 극장 매표소 앞에다가 주어온 과자 상자를 깔아놓고 둘러앉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까지 쳐가며 아침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누가 보면 영락없이 집 나온 가출 청소년들의 모습으로 말이다. 내가 제안한 거지만, 택시 잡아타고 돌아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주저앉은 게 여러번이었다. 그러고 있는 내 자신이 무지하게 한심스럽더란 말이다.

 


그런데 아침 해가 뉘엿뉘엿 밝아올 즈음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극장 앞으로 달려오기 시작하더니, 입장권을 팔기 시작했을 때에는 매표소 앞에 늘어선 줄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고, 그 기나긴 대열 맨 앞에 나와 내 친구들이 우뚝 서 있었다. 밤새도록 날 비웃던 한심스러움이 묘한 뿌듯함과 쾌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역시 부지런한 놈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구나! 남보다 앞선 자리에 섰을 때 이런 뿌듯함과 쾌감이 있구나!'

그러나 난 결국 그날 영화를 보지 못했다. 목적한 대로 기념 티셔츠를 받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밤을 꼴딱 새운 후유증 때문에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틀어주는 광고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눈을 뜨니까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결국 그 영화는 제법 시간이 지나서 개봉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은 후에 다시 극장에 찾아가서 줄 서서 표 끊고 봤다.

영화 내용은 간단했다. 맷집 무지하게 좋은 주인공이 온갖 위험과 역경을 헤치고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뻔하디 뻔한 영웅담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뻔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 주인공의 맷집, 그게 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거다. 그래, 결국엔 맷집 좋은 놈만이 살아남는다. 최후의 승자는 실력도 용기도 지혜도 아닌, 맷집 좋은 놈이다. 맷집을 기르자.

그로부터 어언 20여년이 흐른 지금, 이 비정한 영화판에서 나는 여전히 죽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다. 내가 실력이 좋아서? 인간관계가 좋아서? 처세술이 뛰어나서? 운이 좋아서? 천만의 말씀이다. 부지런함과 맷집, 이걸로 버티고 있는 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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