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해숙(56)이 <도둑들>(감독 최동훈)로 ‘천만영화’ 주인공 대열에 합류했다. <박쥐>(감독 박찬욱)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레드카펫을 밟고 <도둑들>로 ‘천만배우’ 이력도 겸비한 배우가 됐다. 송강호·이정재 등에 이어 여배우 가운데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주변에서 천만을 기대할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천만을 돌파해 얼마나 기쁜 줄 몰라요. 함께한 배우·스태프와 관객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칸의 여인’과 ‘천만 여인’을 모두 이룬 최초의 여배우가 됐습니다.
“그런가요? 세상에, 내가 그런 배우가 되다니, 50대에….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도둑들> 시나리오 받고 떨렸다고 했는데요.
“최동훈 감독의 작품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떨렸어요.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황혼의 여도둑에게 딱 맞는 ‘씹던 껌’이라는 서글픈 별명과 ‘이제는 세금 막 내면서 살고 싶다’는 등등의 대사,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마카오에 갔다가 다른 꿈을 찾지만 오래지 않아 잃는 삶…. 한국영화에 없던 캐릭터를 내가 맡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흥분됐어요.”

-극중 인물이 되기 위해 사전에 한 게 있나요.
“살을 뺐어요. 이 나이·경력에 떨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어서 의욕이 넘쳤죠. 미팅을 하면서 많은 걸 준비하고 싶어서 감독에게 물어봤는데 ‘너무 하실 것 없고 아무래도 날렵한 도둑이 좋겠죠’ 하더군요. 중년의 사랑도 보여줘야 해 다이어트에 돌입했는데 정말 힘들더군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더 멋있어진 ‘첸’(임달화)의 얼굴·전신 사진을 화장실에 붙여놓고 저를 채찍질 했죠. 이대로는 자격이 없다고. 이제까지 연기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10개월 간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살을 빼고, 얼굴에 익숙해지면서 사랑하는 마음도 키울 수 있었어요.”

 

-(섹스를)안 한 지 10년 됐다고 첸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대사 연습할 때 안 웃은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캐릭터와 한 몸이 되면서 몹시 떨렸고,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질 것 같았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는 걸 느꼈어요. 안 해도 되는 말인데 생명 같은 사랑을 느낀 거에요. 도둑이 아닌 50대 중반의 여자로서. 키스를 먼저 하고 불쑥 고백도 했지만 그러고는 더 다가가지 못 해요. 소녀처럼. 50대지만 마음은 10인 거죠. 각 커플들의 사랑을 각각의 영화로 만들어도 풍성할 것 같아요.”

-대사를 하면서 애드리브도 곁들였는지요.
“대본 대로예요. 감독은 굉장히 정확해요. 세세한 시간까지 계산하는 완벽주의자예요. 짧은 대사에 여자의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적재적소에서 여인의 짙은 회한과 간절한 바람을 읽게 해주는 대사가 예술이에요. 완벽한 대사여서 어떤 말을 더하는 건 그것에 흠집을 내는 거였어요.”

 

-‘팹시’(김혜수)에게 ‘세상과 한 판 붙은 인생’이라고 하죠.
“슬프고 치열했던 여자의 삶을 묻어냈어요. 어느 기자가 <도둑들>의 씹던 껌과 <박쥐>의 ‘라 여사’가 같은 배우인가 싶었다고 하더군요. 라 여사의 움직이지 않는 눈 연기가 기억난다면서.”

-영화 시작을 여는 전과자라는 점이 닮아서인지 <무방비 도시>(2007)가 떠오르더군요.
“<무방비 도시>에서 ‘강만옥’은 전설적인 소매치기의 대모지만 형사인 아들(김명민)에게는 엄마에요. 아들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손가락질 받는 엄마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모정이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저는 제가 맡은 극중 인물의 이름을 다 기억해요. 모두 저 자신과, 세상과도 싸워온 저의 분신이거든요.”

-<도둑들>에서는 어떤 점에 역점을 뒀는지요.
“저는 욕도 한 마디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정했는데 감독은 달랐어요. 도둑질에는 전문가지만 평소에는 인간적이고 우아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첫 촬영이 부산 창고장면이었는데 무진 애를 먹었죠. 밤새도록 대사의 감정·템포를 연습했어요. 덕분에 두 번째 박물관 장면 때에는 감독의 웃음과 박수를 받았죠. 상상하지 못 했던 캐릭터여서 더 매력을 느꼈고, 도전 의욕이 샘솟았고, 덕분에 저의 최대치가 뽑아져 나온 것 같아요.”

1974년 MBC 7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해숙은 ‘국민엄마’로, ‘엄마연기 달인’으로 손꼽힌다. 엄마로 출연해 주목을 끈 대표적인 영화로 <우리 형>(2004) <해바라기>(2006) <무방비 도시>(2007) <경축! 우리사랑>(2008) <박쥐>(2009) <친정엄마>(2010) <마마>(2011) 등이 있다.

                <마마> <친정엄마> <경축! 우리사랑> <무방비 도시> <해바라기> <박쥐>(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각각의 엄마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하나로 뭉뚱그리면 엄마인데 캐릭터가 다 달라요. 다른 사연을 지닌 다른 엄마예요. 그래서 병적일 정도로 집념을 갖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죠. 그런 게 쌓이고 쌓여 캐릭터와 닮은 인물이 되고, 끊임없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박찬욱·최동훈 감독이 ‘라 여사’와 ‘씹던 껌’을 제게 준 것 같아요. 훌륭한 두 분과 작업하면서 제 나이에 가지고 있는 저의 모습과 숨겨진 매력을 끄집어 내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배우가 된 데 감사해요.”

-캐릭터에 다가가나요, 캐릭터를 끌어오나요.
“캐릭터 속으로 무식하게 들어가는 쪽이에요. 그 인물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서 파고 또 파요. 좀 심하게 제 인생을 던져요. 백지처럼 비우고 있다가 채워요. 채운 뒤에는 다시 버리고. 저의 연기 인생은 진행중이에요. 엄마이든 아니든 다양한 역할을, 배우 김해숙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여자 악역도 해보고 싶고, <도둑들>을 계기로 우리 나이 배우들도 사랑을 하는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해요.”

-<도둑들>의 씹던 껌이 원래는 남자였다고 하더군요.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자로 바꿨대요. 덕분에 제게 행운이 주어진 거에요. <무방비 도시>의 강만옥도 처음에는 남자(아버지)였어요. <해바라기>를 찍을 때 이 영화사의 다음 작품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여자(엄마)여야 더 절절할텐데 왜 남자’냐며 화까지 냈어요. 신인 감독이 오랫 동안 준비한 작품이어서 엄마로 바뀔 거라고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한 달쯤 뒤에 바뀐 대본과 함께 출연제의를 받고 얼마나 짜릿했는지 몰라요. 감독이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봤고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면서 울었다고 하더군요. 돌이켜보면 연유 없이 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김해숙은 <공동경비구역JSA>를 보고 박찬욱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고 기원했다. 그 바람을 <박쥐>로 이뤘다. <박쥐>를 마친 뒤에는 최동훈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고 했는데 <도둑들>로 이뤘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데에다 행운도 뒤따랐다. <도둑들> 제작사(케이퍼필름)의 안수현 대표는 <박쥐> 프로듀서고, 최동훈 감독의 아내이다.

“좋은 영화에 대한 갈망과 꿈꾸던 일이 속속 이뤄진 데 감사해요.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격이 없는데 이렇게 큰 선물과 사랑을 주신 분께 두 손 모아 감사드려요.”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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