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민 감독(46)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각광받고 있다. 개봉 26일 만인 지난 8일 800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돌파했다. 현 추세라면 조만간 ‘1000만 고지’에 오를 듯하다. 대구대 축산학과를 졸업한 추 감독은 데뷔작 <마파도>(2005)와 <사랑을 놓치다>(2006),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로 주목받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네 번째 작품이다. 한 유명 감독이 돌연 하차한 뒤 각색·연출을 맡아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으로 풀어냈다. 추 감독과 <광해, 왕이 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 승정원 일기 광해군 8년 2월 28일에 적힌 글귀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15일간의 행적은 지워졌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 15일간의 전말을 영화로 창작한 작품이다. 암살·역모 위협에 시달리던 ‘광해’(이병헌)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고, 도승지 ‘허균’(류승룡)이 물색한 저자의 만담꾼 ‘하선’(이병헌)이 광해가 몸져 누워있던 보름 동안 왕노릇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모 감독이 돌연 하차한 뒤 연출을 맡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종영 3~4개월쯤 뒤인 작년 9월에 제안을 받았다. CJ E&M이 기획·개발한 시나리오를 읽고 각색을 하겠다고, 각색한 것에 이견이 없으면 하겠다고 한 과정을 거쳐 연출을 맡았다.”

-유사 소재의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데이브>(1993) <카게무샤>(1980) 등을 염두에 뒀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왕이 천민으로서 느끼는 이야기였다. <광해~ >는 반대로 천민이 왕이 되어 느끼는 이야기고. <데이브>는 몰랐고, <카게무샤>(1980)는 워낙 좋아하는 영화였다. 다른 영화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저는 저대로 요리사가 요리를 하듯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각색은 얼마나 했나.
“첫 각색에 한 달쯤 걸렸다. 좋다는 회신은 금방 받았다. 이후 3개월여 준비 작업을 했다. 겨울은 촬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고 극중 공간에 푸름이 보였으면 해서 피했다. 마침 이병헌씨 스케줄도 2월 이후에 가능했다. 6월까지 찍었다.”

-각색은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지.
“처음 읽은 시나리오는 완성도가 뛰어났다. 이미 검증받은 시나리오였다. 그 시나리오에 사람들 간의 관계 등 내가 좋아하는 점을 보완했다. ‘조내관’(장광)과 나인 ‘사월이’(심은경) 등 왕 주변 인물의 비중을 더 키웠다. 관계를 늘리고 줄이는 식으로. 눈에 보일 정도로 한 건 아니다.”

 

-하선은 조내관·사월이 등을 가까이 하면서 허수아비에서 벗어난다.
“사람은 주변 사람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다. 두 사람은 하선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조연이 살아야 영화가 산다는 점에서도 두 인물의 역할이 중요했다.”

-객석에서 시종 웃음이 잇따른다.
“<광해~ >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제작비 63억원, 프린트·홍보 마케팅비 30억원) 톱스타가 나오는 상업영화다.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으로 코미디를 차용했다. 코믹한 장면은 현장성이 중요하고 배우들 몫이 크다. 배우들이 ‘촉’이 좋고, 호흡이 잘 맞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잘 살아나도록 찍었다. 인물(배우)이 살아야 영화가 산다고 생각한다.”

하선이 허균을 처음 만난 뒤 돌아갈 때 천장 아래 대들보에 부딪히는 건 이병헌의 아이디어다. 이병헌이 그런 장소에서 찍자고 해 물색을 했는데 운좋게 두 번이나 부딪치는 곳을 찾아냈다. 허균이 퇴청을 앞두고 실제로 엿을 먹으라고하는 장면도 류승룡이 제안했다. 호위무사 ‘도부장’(김인권)이 의심을 했던 하선에게 감복해 울먹이다가 울음을 토하는 장면은 여러 층위로 찍었고, 모니터 결과를 감안해 현재의 것을 썼다.

 

-매화틀(왕의 이동용 변기) 관련 장면이 압권이다.
“사극은 창작의 여지가 많다. 실제에 기반한 가상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기분좋게 속아준다. 매화틀은 실제이고 관련 이야기는 만들어낸 것이다. 먹성 좋은 하선과 수라상, 상궁·나인들에 관한 장면 등도 모두 창작한 것들이다.”

-하선이 ‘대동법’을 시행하고 명과 청나라를 두고 실리적 외교정책을 펴려는 장면이 강렬하다. 현 정권의 정책과 대비된다.

“정치적메시지는 분명히 있지만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두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결코 거대 담론에서 시작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왕에 관한 이야기다. 광해를 재조명한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은 하선이라는 가상의 인물이다. 천민인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우리가 원하는 왕은 어떤 사람일까….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왕이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경쾌하고 재밌게 우화적으로 담았다. 실제 왕이 하선처럼 말한다면 닭살일 수도 있다. 천민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왕의 말투와 행동, 고뇌여야 관객들이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궁의 내·외부 장면이 돋보인다.
“촬영 당시 가장 고민한 부분이 공간 활용이다. 조선시대에 가장 높은 사람의 이야기니까 왕의 거주 공간을 실제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게 담고 싶었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실제 궁궐 촬영은 어렵게 허가를 받아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하루씩 찍었다. 내부는 물론 외관 촬영도 제한적이서 안타까웠다. 고증을 철저히 했고 예산 내에서 내외의 공간과 의상·소품 등 미술에 비중을 더 뒀다.”

임금의 침실과 회의실, 대전(정전) 등의 세트는 실제처럼 최대한 크게 지었다. 나무도 베니아판이나 장판이 아니라 원목을 사용했다. 하지만 실제를 오롯이 구현하는 건 예산 등의 문제로 불가능했다. 추 감독은 “미국에서 시사를 했을 때 건축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더 잘 보여줬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털어놨다.

 

추창민 감독은 대구대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막연하게 영화감독을 동경했던 그는 뒤늦게 충무로에 뛰어들었다. 여균동 감독의 <죽이는 이야기>(1997) 연출부를 거쳐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1998)에서 스크립터로 일했고, 장문일 감독의 <행복한 장의사>(2000)에서 조감독을 맡았다. 추 감독은 “스크립터는 영화 내내 감독과 함께 한다”면서 “감독 지망생에게 꼭 스크립터를 해보라고 권한다”고 했다. 김성수 감독을 스승으로 꼽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진정한 정치 지도자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우리 시대의 열망을 담아 관객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귀를 열고 들으시라고 소리쳤나이다’ ‘임금이라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음을 어찌 모르시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의 목숨이 더 소중하오’…. 추 감독에게 이상적인 지도자를 물었다. 추 감독은 조내관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임금이 될 수 없다’고 하는 대사를 든 뒤 “광해와 하선이 다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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