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창석(42)은 남다른 개성·연기력·이력을 지녔다. 그는 탈출 동아리, 노래패 겸 극단, 마임극단을 거쳐 ‘충무로’에 입성했다. 부산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철공소 등에도 다녔으며, 뒤늦게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했다. 최근 400만 명이 넘게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비롯해 <퀵> <시체가 돌아왔다> <고지전> <맨발의 꿈> <헬로우 고스트> <혈투> <의형제> <영화는 영화다> <바르게 살자> <괴물> <친절한 금자씨> <마지막 늑대> 등 20여 편에 출연했다. 요즘 <협상종결자>(가제) <조선미녀 삼총사> 등을 찍고 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조조의 무덤을 통째로 털었다는 전설의 도굴 전문가 ‘석창’. 경찰 ‘최철곤’(양동근)과 ‘고정식’(황정민)이 기차에서 다툴 때 중간에 앉아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남자 ‘실눈’. 고창석이 최근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영화 데뷔작 <마지막 늑대>(2004)에서 맡은 배역이다. 석창은 주인공, 실눈은 단역이다.

<마지막 늑대>에서 고창석은 출연료로 1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내심 얼마나 환호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그해에 세 달 넘게 연습하고 한 달 동안 공연한 동아연극상 수상작 <벚나무 동산>에서 받은 출연료는 35만원이었다.

고창석은 이후 열심히 오디션을 봤다. <친절한 금자씨>(2005)에 총기 기술자인 ‘우소영(김부선)의 남편’, <야수>(2006)에 ‘구룡파 어깨’, <예의 없는 것들>(2006)에 ‘피아노맨’, <괴물>(2006)에 ‘격리공간 조무사1’, <아이스케키>(2006)에 ‘경찰1’, <수>(2007)에 ‘야쿠자1’로 출연했다.

                                                    <친절한 금자씨>의 고창석(오른쪽)

<친절한 금자씨> 촬영은 사투리 억양이 남아 있어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겠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원래 말투대로 하라”는 김부선의 조언에 힘입어 촬영을 마쳤다. <예의 없는 것들>에선 하루 촬영을 위해 피아노까지 배웠는데 편집 때 잘렸다. <야수>에서는 “야, 없어?” 등 대사가 짧았다. 10분 만에 끝냈다. 반면 <괴물>에서는 “원효대사가…” 등 대사가 두 줄에 불과했는데 쩔쩔맸다.

<괴물>은 1301만9740명이 관람한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다. 훗날 보너스가 100%씩 지급됐다. 후배들도 받았는데 고창석은 못 받았다. 함께한 친구가 봉 감독이나 제작사에 대신 말해주겠다고 했을 때 고창석은 “가만 있어라, 씨…” 했다. 소임을 원활하게 다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두 영화가 아니었다면…
일련의 출연작을 통해 고창석은 영화는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가운데 <바르게 살자>(2007) 시나리오를 받았다. 배역은 조연인 형사반장 ‘우종대’ 였다. 시나리오도, 캐릭터도 좋았다. 고창석은 이번 기회에 영화를 제대로 알아보자고 마음 먹었다. 3개월간 삼척 등 촬영장에 머물면서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고 습득했다.

                 <영화는 영화다>의 고창석. 고창석은 이 작품으로 제1회 KMDb 초이스어워도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후 <영화는 영화다>(2008)에 출연했다. 고창석은 처음에 출연을 고사했다. 극단 일을 좀 봐야 했고, 저예산 작품이어서 출연료도 적을 것 같아. 그런 중 ‘봉 감독’ 역에 고창석을 놓고 각색했다는 장훈 감독의 말에 마음을 바꿨다. 배우로서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던 것이다.

봉 감독 캐릭터는 고창석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런 데에다 청신호가 잇달았다. 첫 미팅 때 평소 차림으로 갔는데 “준비해 오셨네요”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이런 상황은 촬영을 할 때에도 잇달았다. “의상은?” “오늘 입고 오신 거 좋은데요”, “메이크업은?” “지금 그대로 노메이크업으로 하죠”…. 촬영 초반 회식 때 “찍기 전에 하다 못해 커피라도 같이 하면서 얘기하면 좋은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게 현실화되면서 현장 분위기가 한층 좋아졌다. 리허설인 줄 알고 연기했는데 그 촬영으로 “컷! 오케이!”라는 말을 곧잘 들었다. 모니터를 볼 새도 없이 속전속결로 자신의 분량 촬영을 마쳤다.

                <영화는 영화다>에서 ‘봉 감’의 모자ㆍ선글래스ㆍ의상 등은 고창석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연기를 했다가 칭찬받은 연극 연습 때 생각이 났어요. 연기 아닌 연기가 진짜 연기라는 걸 알게 됐죠. 두 영화가 아니었으면 배우를 계속 하는 게 힘들었을 거예요. 두 작품을 계기로 영화와 연극, 일상과 연기를 넘나드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됐으니까요.”

■그때 그냥 포기했다면…
고창석은 부산외대 일문과 89학번이다. 신인생 환영회 때 고창석은 만취, 학우들이 데려다 준 탈춤 동아리방에서 잤다. 고창석은 그 인연으로 탈춤반에 들어갔다. 장구 소리가 좋았고, 장구 치고 탈춤 추는 게 재밌었다. 제대로 배우려고 겨울에는 주로 남원 전수관에서 지냈다. 집 생각이 날 때면 더욱 더 장구와 춤에 매달렸다.

운동권이었던 고창석은 1993년 3학년 때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민주화운동에 지친 데에다 나름 할 만큼 했다고 여긴 그는 이듬해 ‘희망새’라는 노래패 겸 극단에 들어갔다. 이전까지 연극이나 연기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1년간 해보려고 했다. 선후배의 무시와 빈정거림 등에 오기가 발동, 4년여 동안 땀을 흘렸다. 배우 장(長)으로 대접받았다.

 

당시 짬을 내 부산 옆의 양산에 있는 공장에 다녔다. 음료용으로 쓸 배를 깎고 갈았다. 철공소에도 다녔다. 이후 희망새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함께 공부를 하자고 상경, 1998년 서울예대 연극학과에 동반 입학했다. 스승·동문들과 함께 마임(mime)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를 창단, 선임배우로 활동했다. 연극 <시간의 사용> <벚나무 동산> <보이첵>, 뮤지컬 <가스펠> <사랑하면 춤을 춰라> 등에 출연했다. 공연기획사 ‘코아 프로덕션’을 창립, 가족 뮤지컬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등을 올렸다.

■연극을 하지 않았다면…
고창석은 ‘폭풍 존재감의 씬 스틸러’로 인정받고 있다. 개성 있는 외모와 연기력으로 흥행에도 결정적 기여를 해왔다. 대표작으로 27일 현재 415만9841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비롯해 312만5069명(퀵), 294만5151명(고지전), 310만9780명(헬로우 고스트), 541만6829명(의형제), 118만7684명(인사동 스캔들), 131만1118명(영화는 영화다), 213만5606명(바르게 살자) 등이 있다.

                고창석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토굴 전문가 ‘석창’으로 출연, 차태현 등과 호흡을 맞췄다.

……

최근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또 다른 <도둑들>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아홉 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금보다 귀한 얼음을 훔쳐내는 과정을 그렸다. 고창석은 출연작을 정할 때 “시나리오보다 함께하는 동료들이 누구인지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라고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해 “컨셉트가 신선하고 차태현·성동일·신정근·오지호·민효린 등과 재미있게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선뜻 출연한 작품”이라며 “촬영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아 매우 흡족하다”고 했다.

고창석은 변신에 대해 “조금씩 폭을 넓히고 있다”면서 제18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작인 <맨발의 꿈>(2010)과 <혈투>(2010) <부산>(2009) 등을 들었다. 이어 “심각한 역할 제안도 받고 있는데 그런 역할은 연극에서 많이 했고, 앞으로 더 들어올 것”이라며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를 하고, 연극·뮤지컬에 출연하면서 제작도 하고 싶다”고 했다.

“10여 년 동안 사물놀이·탈춤·노래·마임을 한 게 연기의 원동력이에요. 웃기고 울리고 감동을 주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럴 수 있는 연기의 진정성은 현장은 물론 일상의 삶에서 축적된다고 봐요. 현장 안팎에서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고창석은 심각한 이야기도 무심하게 털어놓는 등 남다른 화술과 유머로 인터뷰 내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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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택수 2012.09.07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장수라기에 나주 배를 파는 과일장사인 줄 알고 들어왔소..

요즘 TV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국민남편’이자 ‘국민아들’로 각광받고 있는 유준상은 상업·독립영화를 아우르는 배우로 손꼽힌다. 대표작으로 <나의 결혼원정기> <리턴> <이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로니를 찾아서> <하하하> <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 등이 있다. 김동원 감독의 <알투비:리턴투베이스>와 민병훈 감독의 <터치> 등이 개봉될 예정이고,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 촬영을 앞두고 있다.

 

 

■‘꿈의 동반’
유준상(42)은 2001년 프랑스 니스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누군가가 해변의 불빛을 가리키며 ‘저 곳이 칸’이라고 했다. 유준상은 그 말에 ‘저기를 내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읊조렸던 칸을 유준상은 2010년부터 3년 연속 다녀왔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로 잇따라 꿈을 이뤘다. 올해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다른 나라에서>로 전세계 매스컴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밟은 그는 칸 거리에서 남다른 경험도 했다.

 

“프랑스 10대 소녀 세 명이 드라마 제목 <넝쿨당>을 한국말로 말하며  저를 반기더군요. ‘재미있게 보고 있다’면서 ‘케이팝을 좋아하다 드라마도 보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하고 감개무량했어요.”

유준상은 이날 평소 꿈도 꾸지 않은 ‘꿈의 동반’이 이뤄진 걸 느꼈다. ‘꿈의 동반’은 유준상이 대원외고 재학생 때 수업시간에, 동국대 연극영화과 1학년 때부터 ‘배우일지’에 쓴 글귀이다. 1999년 6월에 결성된 팬클럽 이름이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쓴 엽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유준상은 대학 1학년 ‘기초연기’ 수업시간에 “배우는 일지를 써야 한다”는 안민수 교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한 권씩 배우일지를 써온 것이다. 최근에는 이 가운데 글과 그림 일부를 발췌 수록한 <행복의 발명>을 출간했다. 인세 수입은 전액 소외된 어린이를 돕는 데 기부한다. <꿈의 동반, 200~2004>는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유준상은 대원외고 재학생 때 이 학교에 온 걸 후회했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피아노 치는 걸 즐기고, 노래 부르고 축구·야구하는 걸 좋아하는 유준상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갈는지 목표가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꿈도 없었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20년 뒤에는 뭔가를 하고 있겠지, 그것이 아트스쿨이면 근사할 것 같다’고 적었다. ‘꿈의 동반’은 이때 쓴 글귀이다.

유준상은 당시 연극영화과에 가거나 배우가 되는 건 꿈도 꾼 적이 없다. 그런 그는 고3 때 꿈을 찾았다. 국민윤리를 가르치던 이만희 극작가(현 동국대 교수)의 “니가 갈 데는 연극영화과”라는 말을 들을 걸 계기로. 연극영화과에 대해 아는 게 없던 그는 졸업한 뒤에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는 데 꽂혀 이때부터 다른 과는 안중에 두지 않았다. 영화감독이 돼 영화를 만들자는 일념에 사로 잡혀 연영과 진학 투쟁을 했다. 그 시절에 대해 유준상은 “반항아였다”며 “머리 기르고, 나팔바지 입고, 멋 내고, 싸움도 많이 하고, 많이 맞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유준상은 졸업 후 재수,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1학년 2학기 때에는 전공을 연기로 바꿨다. 1학기 때 신입생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워크숍 연극을 한 걸 계기로 배우가 되자고 마음 먹었다. 친구나 가족이 대부분인 40명 남짓 관객이 극중 상황에 따라 웃고 눈물도 훔치는 걸 보면서 연기에 희열과 호기심을 느낀 그는 1995년 SBS 탤런트 5기로 데뷔, 5년여 절치부심의 시간을 가졌다. 드라마의 장르, 배역의 캐릭터 등을 가리지 않고 출연해 경험과 실력을 쌓았다. 1993년 아버지가 작고, 가장이 되면서 집도 없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일을 해야할 상황이기도 했다. 숱한 단역과 <네발 자전거> 등 20여 편의 단막극 주·조연을 거쳐 주말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여우와 솜사탕> 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2001·2002년 MBC 방송대상에서 인기상·우수상을 받았고, 뮤지컬 <더 플레이>로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도 수상했다.

■천천히 천천희(喜)
유준상은 탤런트와 뮤지컬 배우로는 각광받았지만 충무로에서는 빛을 보지 못 했다.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딩>(1999)에 ‘수연’(심은하)을 좋아하는 스토커, 안병기 감독의 <가위>(2000)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재로 출연한 뒤 김정호 감독의 <쇼쇼쇼>(2003)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전국에서 11만5000명(이하 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하는 데 그치는 아픔을 치렀다.

                    <가위>의 유준상(왼쪽). 최정윤·유지태·정준 등과 함께 했다. <쇼쇼쇼>에서는 이선균·안재환 등과 호흡을 맞췄다.

 

유준상은 영화가 고팠다. 2005년 SBS 방송대상 연기상 수상작 대하드라마 <토지>를 마친 뒤에는 영화를 찾아 나섰다. 드라마 출연 제안은 모두 고사했다. 우선 영화를 하고 드라마는 그 다음에 하겠다는 뜻을 밀어부쳤다. 이 즈음 황병국 감독의 <나의 결혼 원정기>를 알게 된 유준상은 예전과 달리 감독을 두 번 찾아갔다. 여러 배우가 물망에 올라 있어 자신이 캐스팅이 안 될 확률도 높았지만 개의치 않고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 달여 뒤 택시기사 ‘희철’ 역을 따낸 뒤에는 감독의 고향이자 극중 배경인 경북 예천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희철과 닮은 인물을 만나 나눈 대화를 녹음, 사투리 대사를 익혔다.

촬영이 4개월여 지연되는 동안에는 몸무게를 10㎏ 찌웠다. 안 피던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셨다. 배가 더 나와 보이도록 촬영 전에는 물을 4ℓ정도 마시기도 했다. 마을회관에서 죽마고우 ‘만택’(정재영)과 술을 마시고 횡설수설하는 장면은 실제로 술을 마시고 찍었다. 정재영과 자주 만나 흉금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지면서 진짜 친구가 됐고(촬영을 마친 뒤 유준상의 소개와 중재로 정재영이 분당으로 이사, 이들은 2분 거리에 살고 있음), 극중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효과를 얻었다. 흥행성적(76만7657명)은 썩 좋지 않았지만 유준상은 영화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리턴>(2007)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 <하하하>(2009)로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 <북촌방향>(2011)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난 6월에는 CGV무비꼴라쥬 기획전 ‘이달의 배우’로 선정돼 관객과 함께했다. <블루 발렌타인> <킹메이커> 등의 라이언 고슬링에 이어 두 번째 주인공으로. CGV압구정과 CGV대학로에서 2주 동안 상영된 작품은 <다른 나라에서> <북촌방향> <하하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이다. 이 가운데 <세상에서~ >의 ‘김근덕’은 <넝쿨당>의 ‘방귀남’과 상반된다. 김근덕은 ‘폭력남편’, 방귀남은 ‘국민남편’으로 유준상의 연기 폭과 깊이를 읽게 해준다.

<행복의 발명>에는 유준상의 배우로서의 감성과 지성, 자세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즐비하다. ‘천천히 천천희(喜)’ ‘세상의 모든 길은 장애물 투성이’ ‘생각은 꿈을 만들고 꿈은 현실을 만든다’…. 탭댄스, 색소폰 연주 등 하고 싶은 건 달려드는 그는 “하나라도 제대로 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고, 뮤지컬을 할 때에는 “그러니까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수모를 받기도 했다. 군장대학교 뮤지컬과 교수인 유준상은 “요즘은 배우고 싶은 걸 포기하는 시간이 빨라진다”면서 “변치 않는 꿈은 60살이 넘어서도 뮤지컬 무대에 올라 관객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배우로서의 꿈도 영원한 현역이다. 개봉을 앞둔 <알투비:리턴투베이스>에서 편대장 파일럿, <터치>에서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 알코올 중독자로 열연을 펼친 유준상은 <전설의 주먹>에서는 한때 주먹을 꽤 쓴, 지금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좌절과 시련은 나를 당당하게 만든다. 20년 전 꿈을 세웠던 ‘지금’이 왔지만 나는 또 다른 20년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는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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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파닥>. 3D 애니메이션이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26일~5월 4일)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영화다. 어촌의 한 횟집 수족관에 갇힌 고등어가 펼치는 필사의 탈출기를 극화했다. ‘파닥파닥’은 그 고등어가 바다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몸부림치면서 내는 소리를 말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집념·투쟁을 상징한다. <파닥파닥> 각본·연출·제작자인 이대희 감독(35)을 전주에서 만났다.

 
<소중한 날의 꿈> <마당을 나온 암탉> <돼지의 왕>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 <은실이>…. <파닥파닥>은 <DINO TIME>(다이노 타임) 등과 함께 올해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양어장·바다 등 출신 성분과 아부·항거·방관형 사이의 갈등, 배를 드러내 죽은 체 해서 살아남으려는 처세술, 퀴즈 배틀…. 수족관 물고기들의 세상을 통해 우리 사회를 풍자한 재미와 묵직한 메시지가 퍼덕인다. 물고기들의 세밀한 동작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낸 3D 기술력이 재미와 의미를 더해준다.

 


-언제, 어떤 계기로 기획했나.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닐 때 구상했다. 직장생활이 좀 답답해 자유롭게 창작에 전념하고 싶었다. 감독 데뷔 제의를 받고 2004년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2007년 여름에 회사(이대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물고기 세상을 소재로 했다.
“구속과 자유, 두 낱말을 놓고 고심을 많이 했다. 수족관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바다나 양어장에 있다가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들의 세상을 우리들 세계의 축소판으로 삼았다. 이는 애니메이션만 가능하다. 반면 물고기는 사람·동물보다 생김새가 단순해 표정·감정·심리 변화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눈물도 사용할 수 없다. 감정 변화의 초점을 찾아 이를 고조시키는 걸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기어 체인지’라고 한다. 이야기와 그림의 기어를 바꾸고 가속력을 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등어를 암컷으로 설정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구속받는 걸 상징하나.
“그렇게 볼 수 있다. 그에 앞서 수족관 지배자인 ‘올드넙치’를 수컷으로 정하고 ‘고등어’는 상반되게 암컷으로 했다. 여성의 반란이 더 극적이고, 고등어의 꿈이나 환상을 뮤지컬로 보여주는 데 있어 여성의 목소리가 더 적합하다고 본 것도 요인이다. 뮤지컬 장면이 네 번 나오는데 원래는 일곱 번이었다. 올드넙치 등이 부른 건 다 편집했다.”

-뮤지컬 장면은 기둥 드라마와 그림이 다르다.
“기둥 드라마는 현실이고, 뮤지컬 장면은 판타지다. 그래서 그림·색감 등이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기둥 드라마는 3D지만 뮤지컬은 2D다. 뮤지컬 가사도 직접 썼고 각본 작업 때 음악작업을 미리 의뢰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사전녹음인가 후시녹음인가.
“사전녹음이다. 3D는 선녹음을 하고 작화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실사영화에서 입모양과 소리가 안 맞는 것과 다름없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처음부터 싱크로율(정확도·완성도)을 고려해 전문 성우를 기용했다. 예산상의 문제도 있고. 모두 세 번 녹음했다.”

-각본은 얼마만에 썼나.
“그간 구상하고 메모한 걸 토대로 첫 각본은 1개월만에 썼지만 이후 1년 넘게 수정·본완을 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1년 반 정도 했다. 극중 어촌과 횟집은 강원도 속초 동명항 갯배마을이다. 무경험자들은 위험하다고 태워주지 않으려고 해 각서를 쓰고 미술·기술감독과 함께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면서 죽는 줄 알았다. 6개월 정도 서울의 횟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때 횟집일기를 쓴 게 작품을 구상·완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완성하는 데 오래 걸렸다.
“2년간 준비했고, 실 작업은 3년간 했다. 처음 계획보다 두 배가 걸렸다. 중간에 자금·인력 문제 등으로 무산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은 2D든 3D든 실사영화보다 실제 작업기간이 매우 길다. 이 기간에 한 스태프가 계속 호흡을 맞춰야 톤 등을 유지할 수 있다. 회사를 설립한 건 이 때문이다. 기관의 지원을 받으려면 법인이어야 하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파닥파닥>의 경우 15명을 메인 스태프로 많을 때에는 약 70명이 참여했다. 회사를 유지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덕분에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현금·현물 지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 ‘인디스토리’(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도 제작중에 만났다.”

이대희 감독은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97학번이다. 재학생 때 단편 <THE PAPER BOY>(2002)로 자그레브(크로아티아) 히로시마(일본) 등과 함께 세계 4대 애니메이션영화제로 손꼽히는 안시(프랑스)와 오타와(캐나다) 등의 ‘경쟁’ 부문에 초청받으면서 해외에 먼저 알려졌다. 이후 제6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 <신 암행어사>(2004), 안시 ‘교육’ 부문 수상작 <아이들이 사는 성>(2005), 미국 에미상 ‘TV애니메이션’ 부문 초청작 <양의 전설>(2007) 등에 참여했다.

-해외 유명 영화제를 우선 겨냥하지 않았는지.
“기획·제작 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잘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전주국제영화제로부터 출품을 권유받았다. 마침 영화 완성 시기와 영화제 개최 기간이 맞아 출품했고, 국제경쟁 부문 작품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다.”

-애니메이션 연출은 언제부터 꿈꿨나.
“원래는 조각 전공이었다. 조금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봤다.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어서. 학창시절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소질도 있었고, 만화영화를 엄청 좋아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방황했다. 재능이 부족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어서. 어느날 내 마음대로 그린 물체를 통해 ‘애니메이션 매직’을 느꼈다. 애니메이션 매직은 애니 전공자들 사이에 그림상의 인물·동물이 살아나는, 무생물이 생물이 되는 느낌을 받는 걸 말한다. 애니메이션은 팀웍이 중요하다. 각자의 재능을 교집합, 최상을 추구한다. 단체활동, 공동작업을 좋아한다. 기타를 치면서 펑크록밴드 활동도 4년쯤 했다.”

이대희 감독은 “애니메이션 대명사인 월트 디즈니(1901~1966)와 안철수 교수를 존경한다”며 “삶을 개척하고 영유하는 방식과 개혁적 기업가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파닥파닥>을 통해 세 가지를 구현하려고심혈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물고기를 통해 섬세한 감정 표현을 해보자’ ‘우리나라 환경에서 최적화된 극장판 3D 애니메이션 프로세스를 구축하자’ ‘한국 공기가 물씬 나는 작품을 만들자’ 등이다. <파닥파닥>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물로 온 가족이 함께 볼 만한 동화이자 우화로서 드라마와 뮤지컬의 조화, 허를 찌르는 결말 등이 흥미롭다. 전주국제영화제 수상 및 해외 유명 국제영화제의 잇단 초청이 기대된다. 오는 여름 개봉될 예정이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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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성하(45)가 <화차>(감독 변영주)로 질주하고 있다. <화차>는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지 15년여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 지난 3월 8일 개봉, 24일 현재 200만9185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관람하는 등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택시 운전수, 배추 장사 등을 하면서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는 ‘한 우물을 10년 이상 파면 반드시 생수가 나온다’는 경구를 되새기게 해준다.

<화차>(火車)는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여인(김민희)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조성하는 약혼녀를 찾아나선 남자(이선균)의 사촌형으로 출연했다. 비리 혐의로 옷을 벗은 전직 형사, 백수로 지내며 울분을 삼키는 인물이다. 마지못해 동생을 돕던 그는 전직 형사의 직감과 실력을 발휘해 ‘화차’(지옥행 불수레) 같은 여인의 충격적 삶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밝혀낸다. 

-<화차>의 어떤 점을 높이 샀는지요.
“출연작을 정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게 작품이 지닌 힘이에요. 관객분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의미있게 그렸는지를 중요하게 여겨요. <화차>는 소재는 무겁지만 그것을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풀어냈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점이 좋았어요.”

-맡을 역할은 어땠나요.
“재미있는, 이 시점에서 해볼 만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대왕세종> <성균관스캔들> <욕망의 불꽃> 등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올라갔어요. 주로 신분이 높은, 많은 걸 갖춘, 번듯한 인물을 맡았죠. <화차>의 ‘종근’은 그 인물들과 상반돼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보잘 것 없는, 백수예요. 이렇게 풀어지고 망가진 가운데 바뀌어가는 인물이어서 도전하고, 해내고 싶었어요.”

-실제 백수시절 경험을 끌어왔는지요.
“연기할 때 저는 제가 맡은 캐릭터에 다가가요. 제게로 끌어오지 않아요. 3년쯤 ‘방콕’을 했으니까, 제 안에 있는 거니까, 그 시절 경험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겠지만 그것 보다는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 ‘종근’이가, 바로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했죠.”

-배우로서 <화차>가 갖는 의미는 뭔가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화차>예요. 캐릭터 영역을 넓힌 영화이기도 하고. 주연 배우로 팬·감독·작가 분들에게 조성하는 이런 면모의 역할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봐요.”

조성하는 배우로서 외모와 눈빛이 양가적인 매력을 지녔다. 밝은가 하면 어둡다. 냉정하고 날카로워 보이는가 하면 따뜻하고 우수 어려 보인다. 어떤 표정을 짓지 않아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건드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사연을 봇물처럼 쏟아낼 듯하다. ‘꿀성대’라는 애칭이 말해주듯 목소리 또한 미성이라는 장점을 갖췄다.

-어떤 작품을 우선 하고 싶은지요.
“멜로에요. 40대 중년의 그들다운 사랑 이야기로 관객분들과 공감을 나누고 싶어요. 양조위 같은 느낌의 배우로. 중년 관객분들이 많아져 기획·제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기회가 주어질는지 기다려 봐야죠.”

-<색,계>의 양조위인가요.

“<색,계> <화양연화>, <무간도>에도 멜코 코드가 있죠. <황해>와 <거미숲>에서 센 노출을 한 적이 있어요. 노출에서 중요한 건 그 장면의 절대성 여부예요. 이야기의 흐름상 절대성이 있으면 당연히 해야죠. 배우로서 해야 할 연기의 하나니까.”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조성하 역시 시작은 미미했다. 서울예대 연극과 85학번인 그는 졸업 후 롯데월드와 극단(전설)에서 뮤지컬·연극 배우로 활동했고, 영화는 이민용 감독의 <인샬라>(1996)로 인연을 맺었다. 북한 외교부 무관 ‘한승엽’(최민수)이 구출해 내는, 대사가 몇 마디밖에 없는 병사로 출연했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까지 가 배역 소화 외 스태프 일도 거들었다. 그리고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2001)에 ‘국어교사’로 출연했고 박경희 감독의 <미소>(2003)에서 주연급 조연을 맡으면서 본격 활동에 나섰다.

-배우는 언제부터 하려고 했나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선배들이 미팅을 많이 시켜준다는 말에 끌려. 그러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이게 내게 맞구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까지 개근상도 한 번 받은 적이 없는데 연기로 상을 연거푸 받았거든요.”

-한때 포기하려고 했다면서요.
“서른셋, 넷? 그때 그만두려고 했죠. 15년 이상 한 일을 포기하려니까 힘들었지만 가장의 소임을 해야 하는 당면 과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저의 팬이었던 아내에게 프로포즈할 때 돈을 벌 재주는 없다고 고백했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그런데 집사람이 ‘배우 조성하를 보고 살아왔는데 포기하면 기댈 구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영화·드라마쪽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했죠.”

더불어 택시 운전수도 했다. 로버트 드니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택시 드라이버>(1976)가 떠올라서였다. 주위의 권유로 배추 장사, 경보기 장사, 화분 장사 등도 했다.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장사를 하면서 ‘동업을 하자’거나 ‘독립할 수 있는 자금을 대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매번 사양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여의도와 충무로를 꾸준히 찾았다. 영화 <집행자>(2009)의 연쇄살인마와 드라마 <성균관스캔들>(2010)의 정조대왕이 한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넓은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연기파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파수꾼>(2010) 등으로 각광받고 <황해>(2010)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배역의 비중을 고려하는지요.
“주인공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연극계에서 영화계로 건너오면서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갖가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소화하자는 게 배우로서의 목표예요. 예전보다 중년 배우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데 감사해요. 앞으로 더욱 그럴 수 있도록 일조를 하고 싶어요. 중요한 건 주연이냐 조연이냐가 아니에요. 배우로서 연기를 얼마나 즐기면서 하느냐, 작품 속에 깊이 녹아들어 관객분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공감을 나누느냐가 소중해요.”

<화차> 이후에 소개될 영화는 <온전한 도시>(감독 김문흠) <오백만불의 사나이>(감독 김익로) <비상(飛上):태양 가까이>(감독 김동원) 등이다. 조성하는 10개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축을 관통하는 이색 스릴러 <온전한 도시>에서는 택시 기사, 샐러리맨들의 돈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 <오백만불의 사나이>에서는 한 회사의 상무, 전투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드라마 <비상(飛上):태양 가까이>에서는 비행단장 역을 맡았다.

 조성하는 “뭐도 한 철이라는 말이 싫다”며 “앞으로 출연작을 더욱 신중하게 정하겠다”고 했다. “식상하다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거북이처럼 성실하게 배우의 길을 가겠다”면서. 조성하, 그는 배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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