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41)는 27년차 배우다. 27년째 주연 배우다. 데뷔작 <깜보>부터 최근작 <도둑들>까지 25편의 영화에서 줄곧 여주인공을 맡았다. <어른들은 몰라요> <오세암> <첫사랑> <닥터봉> <영원한 제국> <신라의 달밤> <YMCA야구단> <얼굴없는 미녀> <타짜> <좋지 아니한가> <열한번째 엄마> <바람피기 좋은 날> <모던 보이> <이층의 악당> 등에서 소녀와 여인을 오가며 부침 없이 달려왔다. 각기 다른 여성의 다양한 삶을 밀도있게 소화,  대종상·청룡영화상 등의 여우주연상과 인기상을 10여 차례 수상했다.

 

 

팹시는 <도둑들>(감독 최동훈)에서 김혜수가 맡은 배역이다. 새내기 소녀와 톱스타가 된 여인의 매력을 읽을 수 있다. 1985년과 2012년, 한국영화의 어제와 오늘도 확인하게 해준다.

■ 삼고초려
5년 만에 출옥한 ‘깜보’(장두이)는 떠버리 소매치기 ‘제비’(박중훈)를 만난 뒤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출감한 지 일주일 만에 살인사건 용의자로 쫓기는 신세가 된 깜보는 혐의를 벗기 위해 제비와 함께 나영을 찾는다. 밤무대에서 <울고 넘는 박달재>를 구성지게 부르는 나영을 만나 시계의 출처를 캐묻지만 나영은 영문을 모른다.

감옥에서 막 출소한 팹시는 ‘뽀빠이’(이정재) ‘예니콜’(전지현) 등과 인생 최고의 반전을 꿈꾸며 홍콩으로 향한다. 2천만 달러에 달하는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그 곳에서 몇 년 전 배신의 아픔을 안긴 ‘마카오박’(김윤석)을 만난다. 마카오박의 뒤통수를 치겠다는 의중과 달리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

‘우연’은 ‘필연’의 다른 말이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 열다섯 살 나이에 출연한 ‘연소자관람불가’ 영화 <깜보>로 단번에 주목받은 김혜수의 데뷔 과정은 이 말은 떠올리게 한다.

 

<깜보>로 데뷔할 당시 김혜수는 건강을 위해 익힌 태권도 솜씨 덕분에 출연한 음료·제과 CF로 주목받고 있었다. <깜보> 출연은 김혜수의 CF를 눈여겨 본 이황림 감독의 조감독이 추천하면서 이뤄졌다.

 제작진은 김혜수를 캐스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에 시나리오를 수정, 나영의 비중을 늘리기도 했다. 후반작업 때 원래의 시나리오에 따라 편집, 나영의 분량은 현격하게 줄었지만 김혜수는 박중훈과 함께 1987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야간 촬영이 많았어요. 그런데 밤 10시만 되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 했고, 잠이 들면 못 일어나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어요. 덩치만 성인이지 완전 애였죠. ‘보름달 하면 떠오르는 연예인 1위’에 뽑힌 데 상처받기도 했으니까.”

 

■ 지상 최대의 작전
<깜보>는 제작진이 1980년대 여느 영화의 두 배에 해당하는 5만 피트의 필름을 사용, 한국영화사상 최다 기록을 세울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깜보가 수감된 이후에 면회 한 번 오지 않은 아내를 찾아 제비와 함께 강원도의 한 목장에 간 장면을 찍을 때에는 눈이 많이 내린 데에다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추웠다.

 

<도둑들>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10인의 톱스타가 호흡을 맞춘 범아시아적인 프로젝트다. 서울·부산·홍콩·마카오를 오가는 6개월 간의 대규모 로케이션을 통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와 도심 액션을, 이국의 풍광을 담았다. 싱가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대만·브루나이·중국·홍콩·태국 등 8개 국에 선판매되는 쾌거를 이뤘다.

<깜보> 제작 당시 한국영화는 후시녹음 시대였다. 극중 대사는 대부분 촬영한 장면을 놓고 성우들이 더빙을 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도 립싱크를 했다. 개봉(1986년 3월 11일) 이후 ‘미스테리적 사건의 포물선 위에 희화적인 패러디를 가미함으로써 오락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성적은 저조했다. 서울극장에서 2주간 상영, 1만6224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하는 데 그쳤다.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를 떠나 ‘연소자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게 치명적이었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마지막에 깜보와 제비가 기찻길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기차가 다녀야 할 기찻길에서 사람이 걸으면 안 된다’며 ‘두 주인공이 헤어지면서 끝나면 안 된다’고 했다. 태평성대에 두 사람의 이별은 ‘퇴폐’라고 했다. 어이없는 청천벽력이었다. 이현세의 인기 만화를 영상화한 <공포의 외인구단>도 ‘공포’라는 단어를 못 쓰게 해 이 영화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바꿔 개봉됐다.

“<수렁에서 건진 내딸2>도 원래 제목은 <10대의 반란>이었어요. 심의에서 반란이 걸려 ‘반항’으로 고쳤는데 반항도 안 된다고 해 <수렁에서 건진 내딸>과 상관없는 영화인데 <수렁에서 건진 내딸2>가 된 거예요.”

■ 죽음의 공포
김혜수는 <도둑들>의 수중장면을 찍을 때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지난 27년 동안 숱한 영화와 TV드라마를 찍으면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감정에 휩싸여 몸서리를 쳤다. ‘왜 우리는 이 일에, 이 찰나에 이렇게 매달리는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관객을 위해서인가,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 영화를 위한 것인가.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이 순간에 모든 걸 걸게 만들까….’

 

김혜수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만화처럼 작성된 콘티를 볼 때에도 수갑을 찬 한 손이 자동차에 매인 채 물에 빠지는 장면이 걸림돌이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부산 출신으로, 물을 좋아하고, 수영도 곧잘 해 뚝딱 해낼 거라고 여겼다. 4m 깊이의 수조에서 잠수 전문가 등이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곳에 연습을 하러 갈 때에도 가뿐한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물속에서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쁘고, 근육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두 번째 연습할 때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걸로 여겼고, 공기박스 등 추가 안전 장치를 갖췄지만 촬영에 들어갔을 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까스로 촬영을 마친 뒤 몹시 아팠다. ‘내일 한 컷만 더 찍자’는 최 감독의 문자를 받고 ‘못해요, 진짜로’라고 답했고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이렇게 은퇴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촬영장에는 기다리는 제작진에게 못 하겠다고 말하려고 갔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에 안 들어갈 수 없었고, 첫 촬영 후 모니터를 본 뒤 다시 뛰어들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어냈다.

최동훈 감독은 “혜수씨는 두 작품을 같이 했는데 정말 카리스마가 있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수중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지고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박철수 감독은 “<오세암>(1990)은 모두들 주저하는데 김혜수가 키 만큼 쌓인 눈을 먼저 헤치고 간 데 힘입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두 감독의 말은 가녀린 여배우들이 득세하는 연예계에서 소녀시대에도 여인시절을 곧잘 해내는 등 연기력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이 질주해온 김혜수의 오늘과 어제를 읽고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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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안지혜·오인혜.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신인 여배우다. 레드카펫으로 화제,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만 부각됐지만 안지혜는 <검은 갈매기>, 오인혜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중 <미몽>에도 출연했다. 세 영화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됐다. 안양예고·경상대(이진주) 안양예고·국민대(안지혜) 동덕여대(오인혜)에서 각각 방송연예·연극·방송연예를 전공한 이들은 자부한다. “나는 배우다”.


이진주(34)·안지혜(32)·오인혜(27). 김태식·박철수 감독의 ‘릴레이 영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서 함께한 이들은 “축제는 끝났다”면서 “레드카펫의 추억은 영원히 안녕하고 이제는 영화로 말하고 싶다”고 했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불륜으로 붉게 물드는 바캉스의 악몽과 검게 얼룩지는 결혼의 파국을 통해 인간의 욕망에 대해 조명했다. 이진주·안지혜는 ‘붉은 바캉스’(감독 김태식)에, 오인혜는 ‘검은 웨딩’(감독 박철수)에 출연했다.

-자신의 배역을 소개해 주시죠.
“바람피는 남편(조선묵)에게 앙갚음 하는 무서운 여자 ‘염복순’이에요(이진주)-6년을 사귄 유부남(조선묵)과 떠나기로 한 바캉스 못가고 복순씨에게도 당하는 여자 ‘희래’예요. 기쁠 희(喜) 올 래(來), 이름과 달리 곤욕을 치러요(안지혜)-대학교 스승인 ‘나’(조선묵)를 사랑하는 ‘그녀’예요. 나는 이혼남이에요. 엄밀히 불륜이 아니었는데 그녀가 결혼하면서 불륜관계가 돼요(오인혜)”
 



-어떻게 배역을 맡았나요.
“연예계에 발이 넓어요. 에이전시도 하고 있고. 디자이너 하용수 선생님 소개로 염복순 캐스팅을 도와주다가 제가 했어요. 모두들 사양하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캐스팅 디렉터 소개로 감독님을 뵙고 ‘빌어먹을 바캉스’(원제)의 희래를 원했어요. 감독님도 문 열고 들어오는데 딱 희래더래요-드라마 작가 언니 소개로 시나리오 읽었어요. 다음날 감독님 뵙고 결심했죠. 감독님이 추천해준 <엘레지> <안티 크라이스트>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을 보고 1주일 만에 촬영에 들어갔고.”

-촬영은 얼마나 했는지요.
“20일? 보충촬영에 후시녹음 기간까지 더하면 한 달?-열흘이요-저는 5일간 찍었어요-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잖아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 저는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보면 볼수록 니가 딱 염복순이래요’. 그런 차에 감독님이 대본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래요. 사진으로 찍어보겠다며. 부랴부랴 현장으로 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카메라도 돌린 거였어요. 저하고 동시녹음 감독님만 모른 채. 일종의 ‘몰카’였죠. 그렇게 5일간 찍은 걸 계기로 제가 한 거에요-영화상의 시(詩)도 언니가 직접 썼어요-‘다음 생애에는 꽃으로 태어날래요. 왜 안 예쁘게 태어나 힘들게 사는지. 다음 생애에는 잠깐 피고 지더라도 예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시에요. 실제 제 심경이에요. 욕도 저고요.”

-노출이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하기 전은 물론 할 때에도 실감하지 못했어요. 노출 자체보다 연기를 잘 해야한다는 데 몰두했으니까-그간 연극·뮤지컬·영화를 통해 꾸준히 활동해 왔고 나름 영역을 넓혀 왔어요. 통과의례라고 생각해요. 노출의 필연성, 시나리오 완성도, 감독님 필모그래피 등을 보고 결정하죠-노출 자체보다 노출 연기만 부각되는 게 더욱 힘들어요. 영화 전체를 봐줬으면 해요.”

안지혜는 “여배우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노출 연기로 트라우마랄까, 그런 데 시달릴 수 있다”면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극복하는 한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이진주·오인혜는 “그럴 수 있도록 감독님들과 관객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소감은.
“박진희가 언니가 출연한 게 맞냐고 여덟 번이나 묻더군요. 하정우는 누구 따라왔느냐고 몇 번이나 묻고, (이)범수 오빠는 너의 이런 모습을 몰랐다고 하고. 배우가 된 걸 실감했어요-데뷔한 지 6년 됐어요. 초청받고 ‘이제 배우가 됐구나!’는 느낌이 들었죠.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과 <검은 갈매기> 시사회·GV에 참석하면서 내년에도 후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저도 처음이에요. 개막식 이후 3일 동안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었어요.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영원히 잊지 않고 배우로 살아가는 데 소중한 경험으로 삼자고 다짐했어요.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과 감독파티 등 여러 자리에서 뵌 분들처럼 오래도록 좋은 영화를 하자고 기원했죠. 영화가 좋아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에서 이진주는 컬트적인 새디스트를 보란듯이 해냈다. 김태식 감독의 <웰컴 택시>를 비롯해 김태균 감독 등의 차기작 후보에 올라 있다. 일본 영화인들이 <혐오스런 마츠코 일생> 같은 작품을 기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지혜는 ‘캔디’적이면서 백치미도 지닌 기묘한 인물의 매력을 한껏 펼쳐냈다. 조만간 한 영화 출연이 확정될 전망이다. 오인혜는 사랑의 포로가 된 여인의 이성과 감성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미몽>에 주연인 성형외과 의사로 출연했고, 촬영을 앞둔 박철수 감독의 <생생활활>(Eating Talking Faucking)에 여주인공 기자로 출연한다. 드라마 <어미>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이진주는 캐스팅 에이전시를 하면서 압구정동에서 24시간 포장마차 ‘진주네 밥도둑’을 운영하고 있다. 5평에서 시작한 포차를 100평 규모로 키웠다. 안지혜는 쇼핑몰을 3년간 운영했다. 대학원 석사과정 휴학 중이다. 오인혜는 고교 졸업 후 2년 6개월여 직장생활을 했다. 이진주와 안지혜는 초등학생 때부터, 오인혜는 중학생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꿈을 이룬 이들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어떤 배우를 꿈꾸나요.
“캐릭터 배우로서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어요-많이 생각한 데에서 우러나는 깊은 연기로 작품을 빛내는 게 꿈이에요-배우인 게 자랑스러운 배우로 살아가는 게 목표예요.”

이들은 “부산에서 상처도 받았지만 나았다”고 했다. “또 아프겠지만 다시 나을 것이고 그렇게 배우의 길을 갈 것”이라면서. 이들의 말에 ‘아프니까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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