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56). 연극배우이자 연출가, 최근 창간 28주년을 맞은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객석> 발행인이다. 2년 전부터 영국에서 뮤지컬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26일에는 주인공을 맡은 영화 <봄, 눈>(감독 김태균)을 내놓는다. 자청해서 완전 삭발을 하는 등 열연을 펼친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뮤지컬 <톱 햇>(Top Hat)과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를 올릴 예정이다. 이후에 귀국,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윤석화의 열정 넘치는 삶을 소개한다.

 

 
-<봄, 눈>은 어떤 영화인지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일상의 소중한 기적을 그린 영화예요. 원래 제목은 <눈물이 아름다워>인데 제가 바꾸자고 했어요. 눈물이 아름답다는 걸 믿지만 ‘우는 영화’라는 식상한 느낌을 지레 줄 것 같아서. 극중에 나오는 노래 <봄날은 간다>가 떠올라 <봄날이 온다, 눈물이 아름다워>로 하자고 했고 이를 줄여 <봄, 눈>이 됐어요. 실제로 고난과 슬픔이 짙은 날에도 봄은 오지요. 눈물은 정화·치유·회복의 힘을 지녔고. <봄, 눈>에서 봄은 엄마의 마지막 봄과 남은 가족의 새 봄이고, 눈은 눈물(Tear)이고 눈(Snow)이기도 해요. <봄, 눈>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담았어요.”

-영국에서 출연제의를 받았는데요.
“제의를 받고 저도 정말 의아했어요. 왜 나지? 영국에 있는데? 한국에 ‘순옥’ 역할을 잘해낼 배우들이 많은데? 그리고 나름 헤아려 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강행을 했지만.”

-언제 받았나요.
“작년 가을이에요. 제가 연출한 연극 <나는 너다>(2011)에 출연한 후배에게 먼저 연락을 받았고 설마 했는데 실제로 시나리오를 보내 왔더군요. 이메일로. ‘1년 365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스름 속 새벽 첫 차를 타고 일을 나가는 어머니들께 바친다’는 시나리오를 읽고 진심을 느꼈어요. 어떤 감독인지 궁금해 영국으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죠. 못 올 거라고 예상하고. 그런데 일주일 뒤에 오셨어요. 4박5일 일정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와 지향점이 같아 영화의 진실성을 잘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태균 감독은 윤석화 캐스팅에 대해 “예술적 직감”이라고 했다. “소재가 통속적인데 흔히 예상되는 여배우가 출연하면 더욱 차별화가 안 될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아내가 윤석화 씨를 추천했다”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확신이 섰다”고 했다. “윤석화 씨가 하지 않으면 연출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뜻이 통했다”고 덧붙였다.

 

-유사 소재 영화가 적지 않은데요.
“결정 당시 제가 봤거나 들은 다른 영화와 비교하지 않았어요. 이 영화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 배우로서 검토하는 방법이 다르고, 감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관객들 느낌도 다를 거니까. 결정하고 나서 감독, 제작진과 유사 영화를 놓고 이야기를 폭넓게 나눴는데 그때에도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어요.”


-실제로 완전 삭발을 했습니다.
“감독은 가발을 쓰자고 했는데 제가 삭발하겠다고 했죠.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고 싶고, 고통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어서.”
항암제 치료를 받는 순옥은 머리를 감다가 머리카락이 힘없이 뭉텅이 채 빠지는 걸 보고 머리를 자른다. 공기조차 숨죽이고 있는 듯한 침묵 속에서 들리는 건 서늘한 가위 소리 뿐. 이어 가위질 사이사이에 순옥의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이 신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운 울음으로 변한다.

 

-현장 상황이 어땠나요.
“엔지가 나면 안 되니까 현장에 긴장감이 팽배했는데 새삼 배우가 거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김태균 감독과 스태프, 후배 배우들이 모두 울었어요. 저도 덩달아 울었고…. 저희 엄마가 암으로 4개월을 선고받았는데 15년을 살다가 돌아가셨어요. <봄, 눈> 하면서 세상에 안 계신,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놓고 가신 엄마 생각 많이 했죠.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순옥’도 그래요.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우리들의 엄마죠. 지금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어서 더욱더 순옥이처럼 잘, 열심히 살다가 새로운 봄의 소망과 기적을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으면 해요.”

-세 번째 삭발인데요.
“연극 <덕혜옹주>(1995)와 <위트>(2005)에서 삭발했죠. <덕혜옹주>에선 옹주가 정신병원에서 겪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위트>에서는 난소암으로 죽어가는 영문학과 교수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려고 깎았어요. <덕혜옹주> 때 신혼이어서 남편에게 미안했죠. <위트> 때에는 자긍심과 연민을 느꼈고. 이번에는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걱정스러웠지만 배우로서 쓰일 수 있다는 데 감사했어요.”

-<레테의 연가>(1986) 때 아쉬움이 이번에 열정을 불사른 동기가 됐는지요.
“저는 <레테의 연가>를 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약 사항과 달리 후시녹음 때 성우가 제 역을 했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봤든 제가 한 역은 제가 아니에요. <봄, 눈>은 그 자체로 열정을 불사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제 마음에 들어서 제 의지로 선택했고 출연·제작진과 충분한 교류 아래 신뢰감을 바탕으로 완성한 저의 영화 데뷔작이에요.”

 

-<봄, 눈>에 앞서 출연제의를 받은 영화는.
“여러 편을 받았죠. 그 가운데 두 편은 하려고 했는데 일정 등이 맞지 않아 못했어요. 한국영화는 거의 다 봐요. 많이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중장년층 배우들이 연기하고 동년배들이 볼만한 영화가 드물어 많이 아쉬워요. 앞으로 제가 확신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지나가는 할머니도, 조그만 가게 주인 역할이어도 할 거예요.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감독에게 연출도 의뢰하고. 좋은 영화를 함께 만든다는 기쁨을 나누고 싶거든요.”

-영국 활동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재작년 10월 팀 라이스를 만난 게 계기예요. 뮤지컬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이다> 등 굵직한 작품의 작사가예요. 그와 작품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늙기 전에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자고 결심, 2년 예정으로 들어갔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그럴수록 물러서지 않았어요. 제 바이오그래피를 인정하든 않든, 동양인 여자라고 무시하든 말든,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고 거물급 제작자 리맨지스에게 인정받으면서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지난해 7월 연극 <여정의 끝>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고, 오는 27일부터 뮤지컬 <톱햇>을 올린다. 관객 반응에 따라 폐막하는 오픈런(Open Run) 방식으로. 그리고 오는 11월에는 뮤지컬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공연할 예정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여름에는 귀국, 연극을 공연을 필두로 국내 활동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배우, 연출가, 프로듀서, 공연예술 전문지 발행인…. 윤석화는 “언제까지나 뜨거운,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다”고 기원했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이웨이>(MY WAY). 강제규 감독(48)의 새 영화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오는 21일부터 상영된다. <은행나무 침대>(1996) <쉬리>(1998) <태극기 휘날리며>(2004) 등을 연출, 한국영화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강 감독의 <마이웨이>는 대미를 어떻게 장식할는지 기대된다. <은행나무 침대>는 서울에서 45만2580명(한국영화연감 기준), 전국에서 <쉬리>는 620만9893명, <태극기 휘날리며>는 1174만6135명이 감상했다. 웰메이드 상업영화 개척자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


<마이웨이>(MY WAY)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두 남자는 ‘김준식’(장동건)과 ‘다츠오’(오다기리 조). 마라토너 라이벌이던 이들은 군대에서 상관과 부하, 전우, 그리고 ‘하나’가 된다. 일본과 소련의 노몬한 전투, 독일과 소련의 독소전, 독일군과 연합군의 노르망디 해전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 드라마·주제·볼거리 등이 주목된다.

-또, 다시, 전쟁영화네요.

“<마이웨이>는 휴먼드라마예요.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전쟁영화로 여겼다면 안 했을 겁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이 한국인에게 끼친 영향, 전쟁의 비극성이 화두예요. 반면 <마이웨이>는 두 남자의 휴먼이에요. 적대적인 관계로 만났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서로에게 희망이 된 두 남자의 인생여정을 그렸어요. ‘이제까지 연출한 영화 가운데 가장 만족도가 높습니다. 두 남자의 반목과 화해 과정이 잘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전쟁 장면이 돋보입니다.

“여한이 없어요. 여느 전쟁영화는 물론 세 전쟁 역시 차별화를 꾀하면서 최상의 비주얼을 보여주기 위해 사력을 다했죠. 예산·시간·장소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열정이 넘치는 스태프 덕분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무엇이든지 표현하지 못할 게 없겠다는 자신감도 얻었고.”


-촬영은 어디에서 했나요.

“벌목장은 강원도, 포로수용소·노몬한 전투·독소전은 새만금에서 찍었어요. 컴퓨터그래픽 등 기술력이 뒷받침돼 가능했죠. 하지만 노르망디 전투는 장소의 특성상 해외 로케가 불가피했어요. 그런데 노르망디는 관광지에다 문화자산보호구역이어서 촬영이 불가능해요. <라이언일병 구하기>도 다른 곳에서 찍었죠. 저희는 노르망디와 유사한 라트비아의 한 해안을 극적으로 찾아 그곳에서 했어요. 그곳 역시 보호구역이어서 유해성 물질을 제거하는 등 환경청에 자료·계획을 제시, 하나하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는 완벽한 고증과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3년간 수집한 자료의 양이 무려 300GB. 강 감독은 “독일과의 전쟁에 투입된 소련의 ‘동방부대’ 병사가 100만 명이어서 준식이나 다츠오처럼 독일군의 포로가 된 동양인이 많았을 것 같다”고 했다. <마이웨이>의 시초가 된 사진 속의 주인공은 그 가운데 한 명. 강 감독은 “그의 생존 본능을 가족·연인 이상의 무엇에서 찾았다”며 “준식(장동건)을 마라토너로 설정한 것은 일제시대 한국인의 우상이 고 손기정 선수인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준식이 어디에서든 달리기 연습을 하는데요.

“준식의 꿈은 제2의 손기정이 되는 거예요. 일본·소련·독일군이 되는 준식이 반드시 살아돌아가야 할 이유이자 목적이 거기에 있어요. 격랑에 휩쓸리지만 변치 않아요. 우직한 인물이죠. 반면 다츠오는 변해요. 준식을 보면서.”


강 감독은 미국에 있을 때 <마이웨이> 연출의뢰를 받았다. 당시 제목은 <D-Day>. 실화를 소재로 한 기구한 삶을 다룬 데 끌렸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 나온 한 장의 사진과 이 사진의 사연을 담은 SBS 다큐멘터리를 보고 피가 끓었다. 한국시간에 맞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전화한 뒤 미국에서 하려고 4년간 준비했던 작품을 미루고 2009년 11월 귀국했다. 이후 14개월 간 시나리오를 다시 쓰면서 준비작업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20일간 국내 및 해외촬영을 가졌다. 국내외 촬영에 약 340명의 스태프와 1만6천명에 달하는 보조출연자를 동원했다. 전투 장면에는 다섯 대의 카메라를 사용, 기존 방식과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압 촬영 시스템 등 10여 가지를 모두 활용했다. 완성한 영화 커트 수가 5400여 커트로 여느 영화의 4~5배에 달한다.


-손예진씨가 출연하기로 했다가 백지화됐는데요.

“시나리오 버전이 너댓 개예요. 그 버전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멜로라인 비중이 높아요. 마라토너 준식과 재즈가수가 된 여자가 베를린에서 조우하죠. 그런데 멜로라인으로 인해 두 남자 사이의 이야기가 약화돼 접어야 했어요. 많이 미안해요.”

-일본판은 재편집을 하는지요.

“아니에요. 기우예요. 시나리오를 쓸 때 일본 사람들에게 모니터를 했고 30명을 초청해 가편집본으로 시사회도 가졌어요. 정서적으로 반감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했고. 하지만 중국판은 고려하고 있어요. 중국은 한국·일본과 심의기준이 많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그쪽에서 우선 체크를 해서 보내주면 그 점을 감안해 편집할 계획이에요.”

-해외 개봉 일정은.

“일본은 내년 1월 14일에 개봉해요. 중국과 미국은 2~3월로 예정돼 있고. 이어 영국·프랑스·독일·호주에서 개봉할 예정이에요. 가야할 길이 멀어요. 국내 일정을 소화하면서 각 나라마다 다른 심의기준을 감안, 필요할 경우 편집을 새로 해야 하고 현지 프로모션도 가져야 해요. 예상컨데 5~6월이 돼야 <마이웨이>를 놔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할리우드 진출 다시 시도하나요.

“미국에 있는 동안 제가 선호하는 작품을 하려고 했어요. 그쪽에서 원하는 작품을 연출, 영향력을 키운 다음에 제 걸 해야 했는데…. 그쪽 시나리오를 택했으면 아마 데뷔했을 거에요. 아무튼 4년간 학교 다녔다고 생각해요. 다시 기회가 오면 지혜롭게 대처해야죠.”

강제규 감독은 2009년 김용화 감독과 함께 영화사 ‘디렉터스’(DIRECTORS)를 설립, <마이웨이>에 이어 김 감독이 연출하는 3D영화 <미스터 고>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2월 크랭크인 예정인 <미스터 고> 역시 세계시장을 겨냥한다. 강 감독은 “계속 진보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고 이점이 나를 변화하게 만든다”면서 “미국에서 하려고 했던 <SF>나 그 외 두세 편을 다음 연출작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감독의 마이 웨이는 “품격있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이웨이>의 준식은 강 감독의 ‘아바타’로 읽힌다. <마이웨이>와 이후 작품으로 열어갈 그의 길이 기대된다.  


Posted by 배장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Dreamwork 2012.10.23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마이웨이를 보았습니다. 엄청난 스케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스토리가 너무 엉성해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장준하 선생님 죽음의 의혹을 접하면서 예전에 읽은 고인의 자서전 "돌베게"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 극적이고도 후련한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의 삶은 마이웨이 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소재임을 확신합니다.

    국민의 성금을 모아 장준하 선생님 일생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요. 이 영화가 제작되면 고인을 잘 모르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고 수익이 발생해서 장준하 기념사업회나 핍박받아온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정말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