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41)은 <범죄의 재구성>(2004)을 필두로 <타짜>(2006), <전우치>(2009), 그리고 올해 <도둑들>을 내놓았다. 수상·흥행기록이 돋보인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대종상·청룡영화상·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각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타짜>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과 감독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각색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을 받았다. <범죄의 재구성>은 212만9358명(한국영화연감 기준), <타짜>는 684만7777명, <전우치>(2009)는 613만6928명이 관람했다. 한국영화사상 여섯 번째로 ‘1000만 고지’를 정복한 <도둑들>은 10일 현재 1285만3717명(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최고 흥행작 등극을 앞두고 있다.

 

 

사기꾼들과 도둑들이 펼치는 합동작전의 전말을 그렸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사기꾼들은 한국은행 금고에서 50억 원을 빼낸다. <도둑들>에서 한국과 중국의 도둑들은 마카오의 한 카지노에 숨겨진 300억 원이 넘는다는 다이아몬드를 훔친다. 각각 ‘최동훈표 범죄영화’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보습학원서 국어 강사
“영화는 비주얼 예술이지만 그 뼈대는 이야기에요. 그 이야기를 꾸리는 데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를 많이 본 게 큰 힘이 됩니다.”

최동훈 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소설을 즐겨 읽었다. 밥상머리에서 소설을 읽다가 아버지한테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밥 먹을 때에는 그냥 밥 먹어라’ ‘공부를 그렇게 더 열심히 해라….’

중·고교시절과 서강대 국문학과(90학번) 재학생 때에도 소설은 그의 절친이었다. 국문학과는 제3지망이었다. 제1·2지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적은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였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경영·경제학과에 떨어지고 국문학과에 다니면서 그토록 좋아하던 소설을 맘껏 읽은 게 오늘의 영화감독 최동훈이 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고는 그때는 몰랐다.

                                                  <범죄의 재구성> 개봉 당시 최동훈 감독.

 

신촌 대학가 인근의 헌책방에서 손꼽히는 단골이었던 그는 또 영화광이었다. 2학년 때부터 교내 영화 동아리 ‘영화공동체’에서 활동한 그는 비디오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씨앙씨에’ 등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른바 B자 비디오를 틀어주던 그 곳은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그에게 안식처이자 꿈의 산실이었다. 그는 “(비디오를) 미친듯이 봤다”고 했다. “선배들이 권하는 영화는 무조건 봤다”며 “그때는 몰랐는데 훗날 진가를 깨달은 <재와 다이아몬드>(감독 안제이 바이다) 등도 그때 본 작품”이라고 했다.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감독으로 알프레드 히치콕과 마틴 스콜세지를 우선 꼽았다.

대학생 때 그의 원래 꿈은 기자였다. 전공 수업에 소설·영화를 가까이 하느라 기자 시험 준비를 거의 하지 않은 그는 4학년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 졸업 후 영화감독 등용문으로 손꼽히는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런데 합격 여부를 떠나 돈부터 벌어야 했다. 대학을 졸업(1997)한 마당에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건 염치가 없어 입학금 등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최동훈 감독이 <도둑들>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목동의 한 보습학원에서 ‘국어! 떴다 최 선생’이란 직함으로 강사 생활을 했다. 8개월 간 강의를 맡은 뒤 1998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제15기), 2년간 수학했다. 졸업 후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0)의 연출부 막내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임상수 감독 및 연출부 선배·동료들과 함께 구로동 등을 중심으로 거리의 청소년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3개월 동안 임상수 감독과 연출부에서 인터뷰한 청소년은 700여 명. 임 감독은 이를 근간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최 감독은 연출부에서 보조출연·의상·분장 분야를 맡았다.

“열정적인 임 감독에게 1년여 작업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범죄의 재구성> 연출 당시 힘들 때마다 ‘감독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낼까’라고 생각하면서 고비 고비를 넘겼습니다. 감독님은 형 같은 스승이에요. <범죄의 재구성> 제작자인 차승재 전 싸이더스 대표(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도 그런 분이에요.”

■실제 사례 찾아 발품 3만리
<범죄의 재구성>은 서점에서 보험사기를 다룬 책을 본 뒤 구상했다. 대학 4학년 때 전세금 1800만원을 떼인 적 있는 그는 사기를 다룬 한국영화가 드문 점을 감안, 2001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제작사에서 전문 작가를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고사, 혼자 매진했다.

 

최 감독은 <눈물> 작업 때 경험을 살려 발품을 팔았다. 제작사의 소개를 받아 사기 전과자 등을 만나고 사기꾼들이 자주 가는 경마장 등도 찾아가 사례와 은어 등을 수집했다. 청와대 고위직이나 검사 등을 사칭한 사기극 가운데에는 흥미진진한 게 많았다. 취재를 하도 많이 해 시나리오 작업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먹잇감을 놓고 흙탕물 속을 뒹구는 사기꾼들의 지리멸렬한 삶을 엮으면서 ‘재미있게’를 철칙으로 삼았다. 22개월에 걸쳐 열여섯 번을 새로 썼다. 4개월여 촬영기간을 포함해 후반작업까지 약 8개월 만에 완성했다. ‘대단한 데뷔작’으로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받았다.

<도둑들> 시나리오 작업은 8개월이 걸렸다. 각본·연출 작업 당시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범죄의 재구성> 후반작업 때 ‘최창혁’(박신양)과 ‘서인경’(염정아)의 멜로 부문을 덜어냈던 것과 달리 <도둑들>에서는 ‘마카오 박’(김윤석)과 ‘팹시’(김혜수), ‘첸’(임달화)과 ‘씹던 껌’(김해숙) 등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줄타기·총격 등 액션을 한층 강화했다. 두 장르영화의 재미를 가미, 감상 포인트가 풍성한 범죄영화로 풀어냈다.

 

각본 작업은 영화아카데미 동기이자 <눈물>에서 연출부로 고락을 나눈 이기철과 함께했다. 제작비는 <범죄의 재구성>보다 약 네 배에 해당하는 110억원. 홍콩·마카오 해외 로케이션을 포함해 5개월 보름 동안 찍었다.

영화감독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례로 영화아카데미 15기 열여덟 명 가운데 장편 영화를 내놓은 이는 최동훈 감독이 유일하다. 데뷔도 못한 동기들과 달리 네 편이나 연출, 작품·흥행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런 그지만 그 역시 데뷔작을 내놓기 전에는 숱한 실패를 맛봤다. 글 꽤나 읽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작업한 시나리오는 번번이 미역국을 먹었다. 국내의 모든 시나리오 공모전에 약 10편을 춤품했지만 한 편도 당선되지 않았다. 싸이더스에서 작가생활을 하면서 쓴 두 편의 시나리오도 모두 영화화되지 않았다.

 

최 감독은 자신의 영화사 이름을 ‘케이퍼필름’이라고 지을 정도로 이른바 ‘케이퍼 무비’(caper movie)에 관심이 많다. 다섯 번째 작품으로 경찰영화, 화이트 칼라 범죄영화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그는 “요즘도 시네마테크에서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 <하오의 연정> 등을 보면서 흠 잡을 데 없는 내용과 구성, 연출력에 감탄한다”면서 “언젠가는 로맨틱 코미디도 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계속 오락영화를 찍었어요. <도둑들> 시사 후 제일 기뻤던 평이 ‘1급 오락영화’예요.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즐거워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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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은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를 대표한다. 최근 <도둑들>로 ‘1000만 영화’ 주인공 대열에 합류했다. <타짜>의 조연으로 주목받기 시작, 첫 주연작 <즐거운 인생>을 필두로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전우치> <황해> <완득이> 등을 통해 남다른 연기력과 흥행력을 인정받아 왔다. 요즘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를 찍고 있다.

 

배우의 길은 연기력과 흥행성적에 좌우된다. 김윤석(44)은 연기력은 물론 남다른 흥행성적을 낸 최고의 배우로 손꼽힌다. <즐거운 인생>(2007)으로 126만3835명, <추격자>(2008)로 507만1619명, <거북이 달린다>(2009)로 305만9812명, <전우치>(2009)로 613만6928명, <황해>(2010)로 216만7426명, <완득이>(2011)로 531만502명, <도둑들>로 1112만7671명(8월 19일 현재) 등 이제까지 3413만7793명을 동원했다. 최근 5년 동안 이같은 성적을 거둔 배우는 김윤석이 유일하다.

 

■부산으로 돌아가 라이브 카페 등 운영
살다보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던 것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인 데 있다고, 시간을 유예시킨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여겨질 때 용기있는 사람들은 모험을 감행한다. 김윤석이 그랬다. 30대 초반에 배우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돌아가 이때부터 5년간 연극·영화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


김윤석은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속성에 대해 회의가 생겼다”고 했다. “공연은 필름으로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짙게 밀려왔고, 내가 추구하는 것 때문에 부모·형제와 주변 사람들이 받는 고통도 무시하기 힘들더라”고 했다. “한번 생각을 바꾸니까 연기를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어 배우 생활을 접었다”고 털어놨다.

경제적인 문제도 적지 않았다. 연극 한 편 올리는 데 걸리는 기간은 3개월 정도인데 수입은 50만 원에 불과했다. 한 달에 50만 원이 아니라 세 달에 50만 원이어서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무대에서 느끼는 희열로 심신의 고단함을 달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다시 부산에 둥지를 튼 김윤석은 지인의 부탁으로 라이브 재즈카페를 봐주기도 했다. 음악과 술에 취해 살면서 처음에는 좋았다. 사람들에 치이는 것도 참을만 했다. 그런데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장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를 떠나 매일 밤 술을 마셔 얼굴은 늘 붉었고 살이 퉁퉁하게 쪘다. 몸도 풍선처럼 부풀었다. 옷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늘 정도로. 김윤석은 “30대 초반인데 거의 반평생 산 사람의 모습이었고, 청바지 뒷주머니에 현금이 가득 든 지갑을 넣었을 때 뒤태가 가관이었다”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가차 없이 접었다”고 털어놨다.

 

 

■“배우가 뭐해, 배우는 연기해야 돼”
자신의 꿈을 격려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건 복이다. 부산에 있는 동안 김윤석은 종종 김해가 고향인 송강호의 전화를 받았다. “배우가 연기 안 하고 뭐 하고 있느냐?” “서울로 와서 다시 연기를 하라….”

김윤석은 송강호의 말처럼 다시 연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우로 생존하면서 생활도 해야 하는, 그 고난한 삶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망설여졌다. 낙향할 때보다 더 뜨거운 용기를 필요로 했다. 한 가닥 남아있는 자존심도 걸림돌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 됐다. 현재의 삶에 드리운 빨간불을 목격하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감에 휩싸였다. ‘네 젊음을 어디에 던지고 싶은가?’

 

대답은 연기였다. 묻고 또 물어도 정녕 하고 싶은 건 연기였다. 다시 한 번 가보자, 미련 없이 달려들어 보자고 마음먹고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짐을 쌌다. 친분이 있는 극단 ‘학전’을 찾아가 뮤지컬 <의형제> 등에 출연했다.

                     <범죄의 재구성>(왼쪽)과 <타짜>(오른쪽)의 김윤석.

 

<의형제>는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 말을 배경으로 쌍둥이 형제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꼴통’ 역을 맡은 김윤석은 이 작품으로 전윤수·최동훈 감독, 배우 조승우·방주란 등과 남다른 인연을 얻었다. <의형제>를 관람한 전윤수 감독의 <베사메무초>(2001)에 ‘집달관1’로 출연해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과 빅히트작 <타짜>(2006)에 각각 ‘이 형사’와 ‘아귀’로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의형제>에서 해설자이자 걸인으로 출연한 조승우와 <타짜>에서 호흡을 맞췄고, ‘어머니’ 역을 맡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방주란과 2002년 결혼해 두 아이를 두고 있다.

 

■평생 갈 길, 거북이 걸음으로 정진

필연은 우연에서 출발한다. 충북 단양이 고향인 김윤석은 1986년 부산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1학년 2학기 때 연극과 우연히 인연을 맺었다. 민주화 투쟁으로 휴교·휴강이 잇따라 입대를 염두에 뒀던 그는 어느 날 야외에서 극예술동호회 소속 교우 몇 명이 모여 연극 연습을 하는 걸 보고, 그 모습과 열정에 매료됐다. 곧바로 입회,  <색시공> 등에 출연했다.  2학년 때에는 기성 극단 무대에도 뛰어들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에도 출연했다. 전공 수업은 아랑곳 않고 연극에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혈혈단신으로 상경, 소극장 연극의 메카로 손꼽히는 ‘연우무대’를 찾아갔다. 여느 극단과 달리 연우무대는 단원제가 아니고, 워크숍 공연도 갖지 않아 입단이 불가능했다. 김윤석은 그럼에도 무작장 청소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는 받아주겠거니 하고.

 

이때 같은 처지의 송강호를 만났다. 부산에서 연우무대의 <최선생> 공연을 보고 무작정 상경한 송강호를 만나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연우무대의 <국물 있사옵니다>(1993)를 필두로 <여성반란> <지젤> <자전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등에 함께 출연했다. 장현성·설경구·황정민·조승우와 함께  극단 학전의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면서 배우와 스태프로 땀을 흘렸다. 대개 그러하듯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고 입장권도 팔았다.

김윤석은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멘토”라며 “학전에서 3년간 연기를 하면서 연출부로도 뛰었다”고 했다. “연극은 종합예술이자 노동”이라며 “전방위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 거품이 빠지면서 진정성을 갖게 되고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근원으로 본다”고 했다.

 

송강호·설경구·황정민·조승우 등이 영화계에서 먼저 인정을 받을 때 ‘조바심이 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바로 그 조바심이 사람을 망치게 한다”고 답했다. “평생을 할 일인데 조금 빠르거나 늦는 게 무슨 대수겠느냐”며 “관건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온전히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했다.

연기력이 힘이다. 인내로 정진. 김윤석이 그랬다. 김윤석이 달린다. 거북이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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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44)는 유명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그놈 목소리>부터 <내 아내의 모든 것>까지 일곱 편을 제작,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작 <내 아내의 모든 것>은 21일 현재 459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468만3598명)에 이어 올해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올라 있다. 속속 흥행작을 내놓은 이유진 대표에게 영화 제작·흥행에 대해 들었다.

 

 

-흥행성적이 좋은 비결이 뭔지.
“모르겠어요. 알면 방석 깔고 앉았을 거예요(웃음). 감을 믿고 시작하지만 개봉 때까지 걱정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요.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하는데, 상업영화니까 투자하신 분들께 손해를 끼쳐선 안 되는데…. 할 때마다 배워요. 앞으로도 그렇겠죠.”

이유진 대표는 7연타석 안타·홈런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7년 <그놈 목소리>(감독 박진표)로 314만3247명(한국영화연감 기준), <행복>(〃 허진호)으로 123만9789명, 2008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민규동)로 117만3310명, 2009년 <전우치>(〃 최동훈)로 613만6928명, <내 사랑 내 곁에>(〃 박진표)로 216만265명, 2010년 <초능력자>(〃 김민석)로 216만4805명을 불러들였다. 여섯 편 총 관객 수가 1601만8344명, 편당 266만9724명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을 포함하면 21일 현재 294만4049명이다.

-감이 아주 좋았거나 덜 좋았던 작품은.
“처음부터 좋았던 작품은 <전우치>에요. <내 아내의~ >는 처음에는 낮았지만 갈수록 높아졌고.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하지 않는 30대 이상 남자 스태프들까지 ‘우리 마누라가 이렇다’는 등 반응을 보여 중년 남자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내 아내의~ >는 원작이 아르헨티나 영화다.
“제목이 <아내를 위한 남자친구>(2008)예요. 2010년에 민진수 ‘수필름’ 대표가 보내준 DVD로 봤어요. 대표님은 한 외화 수입사의 권유로 봤다고 하더군요. 작은 영화였고 밋밋했지만 콘셉트와 이야기에 보편성이 있어 대표님에게 하자고 했죠. 수필름과 <~ 앤티크>를 함께 만들었고, 그때 좋은 거 있으면 또 같이 하자고 했거든요.”

-민규동 감독이 처음에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감독님은 스릴러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기획실에서 작성한 시나리오를 보시고 한 달쯤 고민한 뒤에 하자고 하시더군요. 원작 영화는 안 보셨어요. 원작에서 비중이 적은 카사노바(류승룡)를 부부(임수정·이선균)와 대등하게 설정하고 세 인물 모두 비호감적 면이 있는 캐릭터인데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냈고, 배우들이 연기로 잘 살려냈어요.”

-투자는 쉽게 받았는지.
“로맨틱 코미디는 대개 20대를 주인공으로 20대 관객을 대상으로 해요. 우리 영화는 30대 부부에다 한국 상황에 의문인 카사노바가 주인공이죠. 나는 재미있는데 20대 관객에게 어떨는지, 관객층을 어떤 나이대에 맞춰야 할는지 걱정이 많았어요. 투자사들도 상업성을 우려했고. 돌이켜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투자받는 건 언제나 힘들어요. 무용담 같아 조심스러운데 엄마 몰래 집 담보로 대출 받은 게 두 번이에요. 다행히 집을 날리지 않았지만 그때 살이 쑥쑥 빠졌어요.”

-제목은 문제되지 않았나.
“로맨틱 코미디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죠. <7년만의 외출> 등 여러 제목이 거론됐는데 ‘이거다’라고 할만한 게 나오지 않아 원래대로 <내 아내의~ >로 했어요. 준비가 늦어지는 바람에 분위기가 밝아야 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한겨울에 찍느라 힘들었는데 개봉(5월 17일)을 앞두고 더 힘들었어요. <은교> <어벤져스> <돈의 맛> <맨인블랙3> <후궁> <프로메테우스> 등에 가려 영화가 알려지지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얼마나 기대했는지.
“손익분기점(150만 명)을 넘기는 거였어요. 그런 뒤에는 <오싹한 연애>가 300만 명을 넘겼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고 했고.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둬 꿈만 같아요.”

-40~50대로 관객층을 넓힌 점도 의미가 있다. 어느 정도인가.
“20대부터 4,50대까지 관객층이 골라요. 결과적으로 관객층을 넓힌 데 보람을 느껴요. ‘관객의 힘’ 덕분이에요. 스크린을 대거 확보하지 못했는데  개봉 후 8주 동안 큰 등락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관객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최고 성적을 거둔 <전우치> 때는 어땠는지.
“<아바타>(1362만4328명) 1주일 뒤에 개봉됐어요. 개봉 초기 무대인사를 다닐 때마다 폭설이 내렸고. 이래저래 여건이 안 좋았는데 관객이 꾸준히 찾아줘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아바타>가 아니었으면 조금 더 좋았을 거라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기는 했죠.”

이 대표는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해태그룹 계열 광고대행사 코래드에서 7년 간 카피라이터, CD(Creative Director)로 근무했다. 대우전자의 ‘탱크’ 시리즈 등을 맡아 잘 나가던 그는 1997년 돌연 사표를 내고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외사촌 언니(현 오정완 ‘영화사 봄’ 대표)가 프로듀서를 맡은 <정사>(〃 이재용) 마케팅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영화를 하자고 마음 먹은 계기가 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니에요. 큰 포부를 가졌던 것도 아니고. 생활에 변화를 갖고 재미있게 살고 싶었어요.”

-<정사> 마케팅으로 시작했다.
“광고계와 완전 달랐어요. 전문화·분업화된 광고계와 달리 일당백을 해야 했죠. 카피 쓰고, 콘셉트를 잡아 홍보하고, 예산 짜고 매니저·기자 만나고, 성격 좋아야 하고, 짐 나르려면 힘도 쎄야 하고. 무엇보다 광고는 한 달 정도면 그 결과를 볼 수 있는데 영화는 기본이 1~2년이에요. 나온다는 시나리오는 언제 나올는지 모르고, 매일 출근해서 뭔 일을 하기는 하는데 그 결과는 드러나지 않고…. 기다림의 연속인 상황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 시간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함을 느꼈는지 몰라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나.
“사표를 냈을 때 다시 오라면서 휴직처리를 해줬어요. 1년 간 수리를 안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엉덩이가 무거워요. 하나를 시작하면 곁눈질을 안 하는 편이에요.”

이 대표는 <정사> 이후 <반칙왕>(〃 김지운) 등의 마케팅,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이재용) <4인용 식탁>(〃 이수연) <달콤한 인생>(〃 김지운) 등의 프로듀서, <너는 내운명>(〃 박진표) 등의 공동제작을 맡았다. 2005년 12월 23일 영화사 집을 창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사> 개봉 때 서울극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걸 보면서 느낀 성취감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때 연봉이 광고회사 신입사원 시절에 받은 정도였는데 그거랑 상관없이 관객 반응을 보면서 그저 기쁘고 좋았어요. 영화 제작의 매력이 바로 그점이에요. 힘들지만 그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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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43)은 ‘타짜’다. 연기 및 흥행에서. <완득이> <황해> <전우치> <거북이 달린다> <즐거운 인생> <추격자>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 등에서 영화적 캐릭터를 현실적 인물로 체화,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김윤석이 달린다’.

<완득이>가 달리고 있다. 26일 현재 464만2289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이 감상, 한국영화 역대 흥행 톱100에서 33위에 올라 있다. 톱100 작품은 <타짜>(684만7777명·14위) <전우치>(605만913명·20위) <추격자>(507만1619명·28위) <거북이 달린다>(301만1993명·67위) 등과 함께 다섯 편. 이 가운데 <완득이>와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의, 김윤석에 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완득이>는 역대 10월 개봉작 중 1위, <거북이 달린다>는 역대 6월 개봉작 가운데 <신라의 달밤> <강철중:공공의 적 1-1> <포화속으로> <장화, 홍련> 등에 이어 5위에 올라 있다.

-출연작 정할 때 흥행성도 염두에 두는지요.

“영화는 우리 삶을 다뤄요. ‘생존’과 ‘생활’을 그린 두 부류로 나뉘죠. 생존이든 생활이든, 이야기의 타당성,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가 중요해요. 등장인물의 몸에 피가 흐르는지, 그게 관객의 보편적 감성·정서를 건드리면 흥행이 된다고 봐요.”

-<완득이>에서 그것은 뭔가요.
“가장 온전한 사람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죠. ‘완득’(유아인)이는 17년 만에 엄마가 있고, 필리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이 대목에 전율이 일었어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완득이는 과연 어떻게 맞딱뜨려 나갈까? 이때 완득이 담임 ‘동주’(김윤석)는 완득이와 ‘엄마’(이자스민)를 보조하는 존재, 안내자예요. 이 점을 잘 소화하면 된다고 봤어요.”

-<거북이 달린다>에서는.
“수면 위로 드러난 건 형사(김윤석)가 탈주범(정경호)을 잡는 거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딸(김지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실추된 아버지·가장의 위상을 되찾는 거예요. 저간에 깔려 있지만 놀아볼 수 있는 판이었죠. 레드카펫이냐 거적대기길이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절실하게 지켜내야 하는 걸 공감가게 풀어내는 거예요. 드라마와 코미디의 접점, 바람도 막아주고 습도도 조절해주는 창호지(문풍지) 같은 코미디 드라마를 추구했어요.”

-얼마나 예상했는지요.

“이제까지 예상 관객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어요. 편집본을 보고 70점 정도면 어필하겠다는 느낌을 받죠. <완득이>는 그 이상이었어요. 모니터 시사 점수는 굉장히 좋았고. 흥행에서 중요한 점은 감동과 그것을 끌어내는 구체적인 드라마예요. <완득이>는 살아있는 코미디, 웃기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실질적·구체적 드라마가 영화를 끌고 가요.”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신(scene)에 맞춰 그룹별 리딩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이 과정을 통해 리얼하게, 담백하게, 다큐에 가깝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톤을 찾아내고 통일시키자고 했어요. 대사를 바꾸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치고 나오고 어떻게 받아주고, 의논하면서 연습을 거듭했어요. 애드리브가 아닌가 하는 대사들도 사실은 다 사전에 연습한 거에요.”

김윤석은 부산의 동의대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송강호·오달수 등과 함께 부산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를 대표한다. 뮤지컬 <의형제>에서 함께한 배우 방주란과 2002년에 결혼, 두 아이(10·7살)를 두었다.


-강호씨와 부산에서도 함께 했나요.

“서울에서 만났어요. ‘연우무대’의 <국물 있사옵니다>(1993)에서. <여성반란> <지젤> <자전거>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도 함께 했죠. ‘학전’의 김민기 선생님이 멘토예요. 연기하면서 연출부였어요. 연극은 종합예술이죠. 노동이고. 전방위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완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신적·육체적 거품이 빠지지요. 진정성을 갖게 돼요.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근원이라고 생각해요. 연극밖에 모르는 저를 인정해준 부모님, 가족의 사랑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의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죠.”

-영화계에서 동료들이 먼저 뛸 때 조바심이 나지 않았는지.

“바로 그 조바심이 사람을 망치죠. 관건은 내가 카메라 앞에서 온전히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예요. 조바심을 낸다고 될 일이 아니죠. 평생을 할 일인데 조금 빠르거나 늦게 시작하는 것이 뭔 대수겠습니까.”

휴대폰, 담배…. 김윤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두 가지다. 그의 휴대폰 앞자리 번호는 016이다. 그는 “처음부터 016이었다”고 했다. 2G 서비스가 조만간 종료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바꿔야 한다는 말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딸과 약속한 것 중에 지키지 않은 게 있는냐는 물음에 “담배요, 끊어야 하는데….”라며 멋쩍어 했다.

“우리 감독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전체를 보는 시야도 갖춰야 하고.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무엇보다 감독은 하고 싶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연기든 연출이든, 중요한 건 기본에 충실하고 정면 돌파하는 거에요. 기본에서 삐끗하면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건 순간이죠.”

-닮고 싶었던 배우는 누구였나요.

“예전과 달리 요즘은 우리 배우들이 더 흥미로워요. 특히 젊은 배우들에게 더 눈길이 가요. 나를 움직이게 해요. 정유미·심은경·유아인, 갱년기인가? 하하하….”

김윤석은 요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찍고 있다. 김혜수·이정재·전지현·김해숙·오달수 등과 함께. 김윤석은 “영화상의 생존과 생활은 곧 배우들의 삶”이라고 했다. “물든 물리든,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며 “한계점 이상의 끈기를 갖고 연기 아닌 연기로 생존과 생활을 보여줘야 하는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배우의 길은 그래서 힘들지만 그게 또한 달리고 싶은 매력”이라며 기지개를 켰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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