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훈 감독(43)이 새 영화 <터치>(Touch)로 돌아왔다. 오는 8일 개봉되는 이 영화는 일본·중국·홍콩·대만·필리핀·베트남 등 6개국에 사전 판매된 데 이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메리칸필름마켓(10.31~11.7·현지시간)에서 추가 계약이 이뤄질 전망이다. <터치>를 계기로 다시 달리는 민병훈 감독과 ‘힐링타임’을 가졌다. 

 

 

‘동식’(유준상)은 알코올 중독으로 올림픽 메달의 꿈을 접고 중학교 사격부 코치로 지낸다. ‘수원’(김지영)은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한다. 영화 <터치>(Touch)는 이들 부부가 절망의 나날 끝에 만나는 기적을 그렸다. 러시아 시인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떠올리게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포도나무를 베어라> 이후 6년 만이다.
“2009년에 좀 아팠다.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모두에게 ‘힐링’(healing·치유)이 되는,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한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생명’에 관한 3부작(터치·사랑이 이긴다·설계자)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다 썼는데 첫 편을 제작·개봉하는 데 6년이 걸렸다.”

그간 <터치>만 만든 것은 아니다. 장편 <아! 굴업도>와 <열정>, 15분짜리 단편 다섯 편(노스탤지아·가면과 거울·패션·생명·눈동자)도 만들었다. <아! 굴업도>는 1994년 핵폐기장 건설 반대와 골프장 개발 논란으로 사회적 화제가 된 인천 옹진군의 외딴 섬 굴업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올해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소개됐다.

 

-<터치>는 언제 만들었나.
“원래는 <천국의 향기>였다. 남편은 <터치>의 동식과 다르고 아내는 수원과 같은 인물이다. 어쨌든 <천국의 향기>는 2년 동안 크랭크인이 일곱 번이나 무산됐다. 그래서 내 영화사(민병훈필름)를 설립하고 직접 제작에 나섰다. 스태프진과 주변의 많은 분들이 마련해준 성금과 인천영상위원회 등의 지원을 받아서 만들고 배급도 직접 하느라 이제야 개봉하게 됐다.”

이 과정에 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몰린 민 감독은 제목을 <터치>로 변경하고 새로운 내용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바뀐 제목은 서로 마음과 몸을 나누면 모두 함께 용기와 희망,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영화의 주제를 담고 있다.

-촬영을 13회차 만에 끝냈다고 했다.
“세 대의 디지털 카메라로 100% 핸드헬드(들고찍기)로 찍었다. 촬영을 할 때마다 평균 10신(scene) 넘게 찍었다. 한 대는 인물의 감정을, 다른 한 대는 상황을 잡는 식으로 카메라의 시점과 거리 등을 달리해 작년 8월 3일부터 27일까지 13회차 만에 촬영을 마쳤다. 그 전에 콘티(만화 형식의 대본)를 면밀이 구성했고 연극처럼 6개월간 리허설을 했다. 배우들은 현장에 오면 촬영하기에 바빴다. 연기할 때 이성이 개입되는 걸 경계했다. 연기 아니 연기를 하는 걸 원했다.”

-이전 작품과 달리 장면 전환이 많고 전개도 빠르다.
“이 영화는 ‘생명’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여서 정적인 표현 양식을 지양했다. 스릴러 형식의 긴장감과 속도감이 ‘생명’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핸드헬드로 현장성과 즉흥성, 민첩성을 살렸다. 다소 거칠더라도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쫓아가는 식으로 표현했다. 설명하기 보다는 감정으로 이야기했다. 이전 ‘두려움’에 관한 3부작(벌이 날다·괜찮아 울지마·포도나무를 베어라)은 긴 호흡과 여백을 중요시해 800컷(cut) 정도인데 이번에는 2500컷이다.”

-과감한 생략도 돋보인다.
“기획할 때부터 상영시간(러닝타임)을 100분 이내로 하려고 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수원을 성추행하는 이유, 이 할아버지의 통장을 유용(남편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한 수원을 할아버지의 딸이 때리는 장면, 수원의 어린 딸 ‘주미’(김지영)가 ‘채빈’(채빈)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동식)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는 부분 등을 생략했다. 러닝타임이 99분이다.”

-사슴이 몇 차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슴은 두려움과 구원의 상징이다. 생명의 순환 고리 역할을 한다. 각각 두려움의 존재로 다가왔다가 수원에게는 용기를 내게 하고, 동식에게는 생명의 열쇠를 찾게 하는 존재로 작용한다. 그것은 신의 모습일 것이고 신은 생명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한다. 영화는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이 아니다. 사슴의 출현은 판타지다. 판타지는 영화의 맛과 재미를 더해준다.”

사슴은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를 서슴지 않는다. 민 감독 등 제작진이 살펴본 서울과 인천의 사슴은 기가 셌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홍성의 한 농장에서 1박2일에 500만원을 주고 두 마리를 캐스팅했다. 사슴의 특성을 감안, 촬영은 주인이 마취주사를 놓은 다음에 시작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주사를 맞은 뒤 쓰러져버렸다. 다른 한 마리는 시나리오대로 걸어오고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연기를 해줬다. 제작진은 쾌재를 불렀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에서 ‘청소년관람불가’(청불) 등급을 받았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터치하고 해법을 찾아보자는 데 청소년도 동참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청불’이라니…. 왜 그들이 봐서는 안 될 영화인지, 흥행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다. 청소년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그걸 막기 때문이다.”

-이른바 ‘작은 영화’가 설 자리가 좁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문화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심사위원단을 구성, 매년 ‘올해의 영화’를 10편 이상 선정해서 DVD 15만 장 정도를 구입해 전국의 학교·도서관에 공급해 주는 게 한 방법이라고 본다. 관객들이 이곳을 통해 작은 영화들을 자주 감상하면 영화의 다양성이 구현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 공관에도 보내 한국영화(문화)도 알리고 이를 통해 수출도 꾀할 수 있다. 하드웨어(전용관)를 늘리는 것은 어려움이 많다. 관리·유지비도 많이 든다.”

<터치>는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존엄사·의료체계·성폭력·음주문화를 비롯해 교사 임용·복지·간병인 제도·부부 및 부모와 자식의 관계 등에 대해 자연스레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환자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원은 전화로 사제(司祭)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제는 그간 수원이 잘못한 점을 든다. 수원은 “죽어가는 환자를 보지 않고 내 잘못을 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제반 문제가 얽히고설키는 것은 이처럼 본질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실마리를 푸는 것은 관심을 갖고 터치하는 데에 있다. 월드비전 아동보건 글로벌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유준상은 6일 열리는 <터치> 나눔 특별 시사회에서 가장이 환자인 가정과 아동양육시설을 돕기 위해 6000만원을 기부한다. 민 감독은 “터치하면 기적이 생긴다”고 역설했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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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41)는 27년차 배우다. 27년째 주연 배우다. 데뷔작 <깜보>부터 최근작 <도둑들>까지 25편의 영화에서 줄곧 여주인공을 맡았다. <어른들은 몰라요> <오세암> <첫사랑> <닥터봉> <영원한 제국> <신라의 달밤> <YMCA야구단> <얼굴없는 미녀> <타짜> <좋지 아니한가> <열한번째 엄마> <바람피기 좋은 날> <모던 보이> <이층의 악당> 등에서 소녀와 여인을 오가며 부침 없이 달려왔다. 각기 다른 여성의 다양한 삶을 밀도있게 소화,  대종상·청룡영화상 등의 여우주연상과 인기상을 10여 차례 수상했다.

 

 

팹시는 <도둑들>(감독 최동훈)에서 김혜수가 맡은 배역이다. 새내기 소녀와 톱스타가 된 여인의 매력을 읽을 수 있다. 1985년과 2012년, 한국영화의 어제와 오늘도 확인하게 해준다.

■ 삼고초려
5년 만에 출옥한 ‘깜보’(장두이)는 떠버리 소매치기 ‘제비’(박중훈)를 만난 뒤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출감한 지 일주일 만에 살인사건 용의자로 쫓기는 신세가 된 깜보는 혐의를 벗기 위해 제비와 함께 나영을 찾는다. 밤무대에서 <울고 넘는 박달재>를 구성지게 부르는 나영을 만나 시계의 출처를 캐묻지만 나영은 영문을 모른다.

감옥에서 막 출소한 팹시는 ‘뽀빠이’(이정재) ‘예니콜’(전지현) 등과 인생 최고의 반전을 꿈꾸며 홍콩으로 향한다. 2천만 달러에 달하는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그 곳에서 몇 년 전 배신의 아픔을 안긴 ‘마카오박’(김윤석)을 만난다. 마카오박의 뒤통수를 치겠다는 의중과 달리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

‘우연’은 ‘필연’의 다른 말이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 열다섯 살 나이에 출연한 ‘연소자관람불가’ 영화 <깜보>로 단번에 주목받은 김혜수의 데뷔 과정은 이 말은 떠올리게 한다.

 

<깜보>로 데뷔할 당시 김혜수는 건강을 위해 익힌 태권도 솜씨 덕분에 출연한 음료·제과 CF로 주목받고 있었다. <깜보> 출연은 김혜수의 CF를 눈여겨 본 이황림 감독의 조감독이 추천하면서 이뤄졌다.

 제작진은 김혜수를 캐스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에 시나리오를 수정, 나영의 비중을 늘리기도 했다. 후반작업 때 원래의 시나리오에 따라 편집, 나영의 분량은 현격하게 줄었지만 김혜수는 박중훈과 함께 1987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야간 촬영이 많았어요. 그런데 밤 10시만 되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 했고, 잠이 들면 못 일어나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어요. 덩치만 성인이지 완전 애였죠. ‘보름달 하면 떠오르는 연예인 1위’에 뽑힌 데 상처받기도 했으니까.”

 

■ 지상 최대의 작전
<깜보>는 제작진이 1980년대 여느 영화의 두 배에 해당하는 5만 피트의 필름을 사용, 한국영화사상 최다 기록을 세울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깜보가 수감된 이후에 면회 한 번 오지 않은 아내를 찾아 제비와 함께 강원도의 한 목장에 간 장면을 찍을 때에는 눈이 많이 내린 데에다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추웠다.

 

<도둑들>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10인의 톱스타가 호흡을 맞춘 범아시아적인 프로젝트다. 서울·부산·홍콩·마카오를 오가는 6개월 간의 대규모 로케이션을 통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와 도심 액션을, 이국의 풍광을 담았다. 싱가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대만·브루나이·중국·홍콩·태국 등 8개 국에 선판매되는 쾌거를 이뤘다.

<깜보> 제작 당시 한국영화는 후시녹음 시대였다. 극중 대사는 대부분 촬영한 장면을 놓고 성우들이 더빙을 했다. <울고 넘는 박달재>도 립싱크를 했다. 개봉(1986년 3월 11일) 이후 ‘미스테리적 사건의 포물선 위에 희화적인 패러디를 가미함으로써 오락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성적은 저조했다. 서울극장에서 2주간 상영, 1만6224명(한국영화연감 기준)이 관람하는 데 그쳤다.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를 떠나 ‘연소자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게 치명적이었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마지막에 깜보와 제비가 기찻길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기차가 다녀야 할 기찻길에서 사람이 걸으면 안 된다’며 ‘두 주인공이 헤어지면서 끝나면 안 된다’고 했다. 태평성대에 두 사람의 이별은 ‘퇴폐’라고 했다. 어이없는 청천벽력이었다. 이현세의 인기 만화를 영상화한 <공포의 외인구단>도 ‘공포’라는 단어를 못 쓰게 해 이 영화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바꿔 개봉됐다.

“<수렁에서 건진 내딸2>도 원래 제목은 <10대의 반란>이었어요. 심의에서 반란이 걸려 ‘반항’으로 고쳤는데 반항도 안 된다고 해 <수렁에서 건진 내딸>과 상관없는 영화인데 <수렁에서 건진 내딸2>가 된 거예요.”

■ 죽음의 공포
김혜수는 <도둑들>의 수중장면을 찍을 때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지난 27년 동안 숱한 영화와 TV드라마를 찍으면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감정에 휩싸여 몸서리를 쳤다. ‘왜 우리는 이 일에, 이 찰나에 이렇게 매달리는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관객을 위해서인가,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 영화를 위한 것인가.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이 순간에 모든 걸 걸게 만들까….’

 

김혜수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만화처럼 작성된 콘티를 볼 때에도 수갑을 찬 한 손이 자동차에 매인 채 물에 빠지는 장면이 걸림돌이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부산 출신으로, 물을 좋아하고, 수영도 곧잘 해 뚝딱 해낼 거라고 여겼다. 4m 깊이의 수조에서 잠수 전문가 등이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곳에 연습을 하러 갈 때에도 가뿐한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물속에서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쁘고, 근육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두 번째 연습할 때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걸로 여겼고, 공기박스 등 추가 안전 장치를 갖췄지만 촬영에 들어갔을 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까스로 촬영을 마친 뒤 몹시 아팠다. ‘내일 한 컷만 더 찍자’는 최 감독의 문자를 받고 ‘못해요, 진짜로’라고 답했고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이렇게 은퇴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촬영장에는 기다리는 제작진에게 못 하겠다고 말하려고 갔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에 안 들어갈 수 없었고, 첫 촬영 후 모니터를 본 뒤 다시 뛰어들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어냈다.

최동훈 감독은 “혜수씨는 두 작품을 같이 했는데 정말 카리스마가 있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수중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지고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박철수 감독은 “<오세암>(1990)은 모두들 주저하는데 김혜수가 키 만큼 쌓인 눈을 먼저 헤치고 간 데 힘입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두 감독의 말은 가녀린 여배우들이 득세하는 연예계에서 소녀시대에도 여인시절을 곧잘 해내는 등 연기력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이 질주해온 김혜수의 오늘과 어제를 읽고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Posted by 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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